이우환 화백 (왼쪽), 박서보 화백 (오른쪽)
이우환 화백 (왼쪽), 박서보 화백 (오른쪽)
“1960~1970년대 단색화 작가는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게 아니라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일종의 침묵의 저항이였던 거죠.”(미술가 이우환)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가 시각중심적인 사고라면 한국의 단색화는 끈질긴 자기와의 싸움, 행위의 반복입니다. 일본의 모노하(物派)가 세계적인 언어가 됐듯이 단색화도 한국 미술의 브랜드로 탄생한 겁니다.”(미술평론가 윤진섭)

19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사조로 자리잡은 단색화를 재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내달 19일까지 열리는 ‘단색화의 예술’전이다. 정상화, 이우환, 정창섭, 윤형근, 하종현, 김기린, 박서보 등 7명의 작품 30여점이 걸렸다. 내로라하는 한국 단색화 작품이 모두 모인 단색화 전시의 결정판이다.

단색화는 한국판 모노크롬 화풍이다. 화폭에는 한국 고유의 전통성과 함께 내면 깊이 자리한 자유로움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담고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점이 큰 매력이다.

지난 7월 갤러리 현대 개인전에서 좋은 반응을 보였던 정상화 화백(83)은 최근의 결과물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마포 위에 모래를 깔고 오일로 물방울을 그린 작품과 나무 등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신작 3점을 들고 나왔다.

박서보 화백(83)은 컬러 ‘묘법(描法)’ 시리즈를 내놓았다. 붉은색,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 등 다양한 색채감이 화려하면서 한국적 기품을 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지낸 하종현 화백(79)은 신체와 감정의 통합을 시도한 ‘접합’ 시리즈 등 대작 5점을 걸었다. 마대(캔버스)와 물감, 자신의 신체 동작을 통해 변화하는 관계를 표현한 작품으로, 온화하면서 고요한 분위기를 내뿜는 호연지기의 필법이 특징이다.

파리 베르사유궁의 초대전에 이어 내년 영국 테이트 모던 뮤지엄 개인전을 추진하고 있는 이우환 화백의 단색화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 연작, 물감을 느리게 쌓아 올리고 손으로 일일이 누른 뒤 그 위에 분무기로 물감을 뿌려 완성한 김기린 화백(78)의 작품, 암갈색과 군청색 등 비교적 한정된 색조로 깊고 넓은 자연의 섭리를 묘사한 윤형근 화백의 작품, 닥종이를 이용해 독특한 조형세계를 개척해 온 정창섭 화백(1927~2011)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전시를 기획한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한국의 단색화는 표현의 생명성과 힘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서양 작품들과 다르다”며 “최근 미국, 유럽 등 국제 미술시장에서도 많은 컬렉터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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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