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소재·엉성한 스토리·가족영화 부재…상반기 한국영화는 초라했다
지난해 1월 개봉한 ‘7번방의 선물’은 어린 딸에 대한 바보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코미디로 풀어내 1281만명을 모았다. 이어 ‘베를린’(717만명) ‘은밀하게 위대하게’(664만명) ‘신세계’(468만명) ‘박수건달’(389만명) 등 지난해 상반기에 개봉한 관객 수 상위 5개 영화는 신선한 소재와 긴장감 있는 전개 방식으로 총 관객 수 3519만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개봉한 상위 5개 영화의 총 관객 수는 2043만명에 그쳤다. 할머니가 처녀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코미디 ‘수상한 그녀’(864만명)를 제외하면 ‘역린’(384만명) ‘끝까지 간다’(284만명) ‘표적’(284만명) ‘남자가 사랑할 때’(198만명) 등의 흥행 성적은 초라하다.

7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한국영화 관객 수는 4153만명이었다. 시장점유율 43%를 기록했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1년 상반기 이후 3년 만이다. 반면 외화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01만명 늘어난 5496만명을 동원하며 점유율이 41%에서 57%로 뛰었다.

2년 연속 연간 1억명 이상 관객을 모았던 한국영화가 갑자기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한마디로 새로운 것 없이 예전에 잘됐던 것을 답습한 게 관객의 싫증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진부한 소재 △엉성한 스토리와 연출력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전체관람가 또는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의 부족 등을 이유로 꼽았다.

지난해 누아르물(범죄영화) ‘신세계’가 흥행에 성공한 뒤 올 상반기엔 대규모 물량을 투입한 비슷한 소재의 누아르 영화가 잇달았다. 하지만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우는 남자’(60만명) ‘하이힐’(34만명) ‘황제를 위하여’(59만명) 등이 대표적이다.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이 연출하고 장동건이 주연한 액션 누아르 ‘우는 남자’는 감독이 자기 스타일을 반복한 탓에 실패했다. 김태훈 영화평론가는 “극적 구성과 완성도도 떨어졌다”며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안전한 길을 선택한 게 패인”이라고 말했다.

한 남자가 밑바닥에서 최고로 올라가는 이야기를 담은 ‘황제를 위하여’는 엉성한 스토리의 표본으로 꼽힌다. ‘신세계’에서 보여준 그들만의 커넥션도 없고, 돈에 대한 얘기도 피상적으로 그려졌다. 차승원을 여장남자로 내세운 ‘하이힐’은 성적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마무리지었다.

김태균 쇼박스 홍보팀장은 “최대 성수기인 설 연휴에 지난해는 ‘7번방의 선물’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올해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1029만명)이 장악했다”며 “지난 5월부터는 블록버스터를 거의 매주 개봉하는 할리우드 공세에 한국영화들이 밀렸다”고 설명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442만명) ‘엑스맨’(431만명) ‘캡틴 아메리카’(396만명) 등은 볼거리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도 강화했다는 분석이다.

진부한 소재·엉성한 스토리·가족영화 부재…상반기 한국영화는 초라했다
특히 할리우드 대작들은 자극적인 표현을 줄여 가족 관객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겨울왕국’은 전체 관람가이며 나머지 대작들은 12세 이상 관람가다. 그러나 ‘수상한 그녀’를 비롯한 한국영화 상위 5개 작품은 대부분 15세 이상 관람가다. 한국영화는 최대 관객층인 가족영화 시장을 할리우드에 고스란히 내주고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