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마크 쿨란스키 지음 / 박중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363쪽 / 1만6000원
북아메리카 북동부의 조지스뱅크에서 낚싯줄에 낚싯바늘이 여러 개 달린 주낙으로 대구를 낚는 모습을 그린 그림. 비파디 에식스박물관 소장.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북아메리카 북동부의 조지스뱅크에서 낚싯줄에 낚싯바늘이 여러 개 달린 주낙으로 대구를 낚는 모습을 그린 그림. 비파디 에식스박물관 소장.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스페인의 지역감정은 한국보다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스크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며 그 나라를 ‘에우스카디’라고 부른다. 지금도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이들의 독자적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그건 이들이 역사적으로 강한 경제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며 그 기반은 ‘대구’였다. 이들은 엄청난 대구 어족을 발견했고, 이를 소금에 절이는 보관 방법까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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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인은 대구를 잡아오는 지역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15세기가 되자 유럽 전역의 상인들이 대구 어장을 찾아나섰다. 브리스틀 상인들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앞으로 보낸 오래된 편지 한 통은 이들의 탐험 결과를 설명해준다. 이 편지에서 상인은 자신들이 이미 아메리카에 다녀간 적이 있음을 콜럼버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들어 있다. 어민이 자신들의 ‘영업 비밀’을 지켰던 반면 콜럼버스 같은 탐험가들은 신대륙의 발견을 널리 알렸던 것이다.

어부 출신 저널리스트가 대구의 역사와 생태, 요리법까지 7년간 취재한 《대구》는 이 물고기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세계사다. 대구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탐험과 무역은 세계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던 필그림(청교도 이민자)들의 굶주림을 해결한 건 대구의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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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 지역은 1700년대 들어 국제적 상업지역으로 떠올랐다. 대구무역의 중심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유럽인이 원하던 상품인 대구가 있었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미국의 ‘대구 귀족’이 생겨났다. 이렇게 생겨난 도시가 바로 보스턴인데, 미국 독립혁명에는 차(茶)에 대한 세금뿐 아니라 사실 대구 무역을 제한하는 법도 한몫했다.

대구 귀족들은 또 지중해 시장에 팔고 남은 하급 상품을 서인도제도의 설탕 플랜테이션에 팔았다. 이 음식은 노예들이 하루 16시간의 중노동을 버티게 했고, 결과적으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을 활성화시켰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는 사실 대구 없이는 설명하기 힘든 셈이다.

1958~1975년 아이슬란드와 영국은 아이슬란드 해에서의 대구어업권을 둘러싸고 세 차례 전쟁을 벌였다. 아이슬란드의 200마일 영해가 세계의 승인을 받으면서 끝난 이 전쟁은 해양법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쟁으로 기록됐다. 어민들의 생활도 ‘물고기를 가능한 한 많이 잡는 것’에서 ‘허락된 범위 내에서 많이 잡는 것’으로 바뀌었다.

다소 딱딱한 문체가 아쉽지만 물고기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계사가 흥미롭다. 굵직한 역사뿐 아니라 당시 세계인의 생활사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대구의 개체 수는 가파르게 감소해왔다. 입을 벌리고 무엇이든 포식하는 대구보다 더 탐욕스러운 인간의 남획 탓이다. 인류 역사의 일부가 인류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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