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사라진 세계
이언 브레머 지음 / 박세연 옮김 / 다산북스 / 356쪽 / 2만2000원
[책마을] 리더의 실종…세계는 지금 방황하고 있다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의 벨라 센터 내 아르네 야콥센 회의실. 기후 변화에 접근하는 방식에 관한 각국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해 24명의 정상이 모였다. 회의실 밖에서는 100명 이상의 다른 국가 지도자가 합의문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때까지도 호텔에서 나오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온실가스 감소를 위한 규제 방안에 동의하라고 중국과 인도에 압력을 가했으나 두 나라는 미국과 유럽이 정하는 기준에 동의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세계적인 위기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이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것은 중국과 인도, 유럽과 미국 등 누구 탓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브레머 교수에 따르면 실패의 진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기존 선진국과 신흥국들 사이에 희생을 감수해야 할 합의점을 이끌어내기 위한 공통의 기반을 발견하지 못한 것, 둘째는 어떤 단일국가 또는 국가 연합도 합의점을 강제할 만한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책마을] 리더의 실종…세계는 지금 방황하고 있다

브레머 교수는 《리더가 사라진 세계》에서 글로벌 리더십의 진공상태를 ‘G제로(zero)’라고 부르면서 최소한 앞으로 10년 이상 지속될 ‘G제로 시대’에 벌어질 혼란과 갈등, 국가와 기업들이 취해야 할 전략을 제시한다.

G제로 시대를 연 일차적 원인은 미국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세계 최대 채무국으로 추락해 글로벌 리더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도 못 미치는 개발도상국에 가깝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의 주요 2개국(G2)이 공조해 글로벌 리더 쌍두체제를 이룰 가능성도 희박하다.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저자는 비관적이다.

“유럽은 길을 잃었고, G7은 비틀거리고 있으며, G20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자리가 됐을 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 세상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국가나, 국가들의 연합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국가들 간의 협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기후변화, 환경오염, 식량난, 물 부족 사태와 같은 국제적인 문제 또는 한 국가나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있어 구심점이 되어줄 리더가 사라졌다.”

절대 강자가 없는 세상은 혼란스럽다.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도 한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 간 군사·외교적 충돌뿐 아니라 무역과 비즈니스를 둘러싼 경쟁과 충돌이 격화될 전망이다. 저자는 “리더가 사라진 세계에서 각국 정부는 석유와 가스, 금속, 광물, 심지어 농산물까지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요동치는 세상에서 국가와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G2뿐 아니라 어떤 특정 국가에도 지나치게 치우쳐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 같은 신흥국은 여러 나라들과 다양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이른바 ‘중심축 국가’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기업들도 무조건 경쟁만 벌이기보다 다양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정부의 비호를 받는 중국의 국영기업과 경쟁만으로 이기기 어려우므로 이들이 갖기 어려운 최첨단 기술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라는 얘기다.

저자는 책머리에 실린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심각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G제로 세계는 한국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한층 길어진 중국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한국 역시 지역 안에서 새로운 안보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이제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접어두고 내부적으로 힘을 다시 키워야 한다”며 “세계가 미국에 기대하는 리더십을 충족시킬 수 있는 비용 효과적인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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