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영화와 드라마에 나온 책들이 휩쓰는 등 외부 요인에 출판시장이 휘둘리는 것은 시장 자체가 허약하기 때문이다. 1998년 1억9000만부를 넘었던 한국의 연간 도서 총발행부수는 2007년 1억3200만부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8600만부로 급감했다. 약 15년 만에 1억부 이상 줄어든 것이다. 출판시장이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있는데도 한국 사회의 교양 수준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출판街 점령한 TV·스크린셀러] '스마트 충격'에 종이책 외면…발행부수 15년 만에 '반토막'

○고사 위기의 출판업계

최근 출판시장은 말 그대로 ‘말라죽을’ 위기를 맞고 있다. 출판인들 사이에서는 “원수가 있으면 출판사 창업을 권하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마저 나온다. 200여개 출판사가 회원으로 가입한 서적유통업체 문화유통이 최근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출고부수는 연평균 23.1%씩 줄었다. 반품부수는 연평균 34%씩 늘어났다. 출고부수만큼 중요한 게 반품부수다. 나간 책이 팔리지 않고 출판사로 돌아오면 그만큼 창고비 등 재고처리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규모 10위권 이내 대형 출판사들의 사정이 더 나쁘다는 점이다. 대형사들의 출고부수는 연평균 26.5%나 줄어 51~100위 출판사(4.3%)보다 감소폭이 훨씬 컸다. 반품부수도 대형사가 평균 43.8% 늘어 51~100위사의 26.3%보다 심각했다. ㅅ출판사 대표는 “대형 출판사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는 건 한국의 출판시장이 그야말로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문화 융성 구호를 넘어서는 진지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스마트 충격에 휘청

출판시장이 흔들리는 이유는 뭘까. 일단 ‘스마트 충격’이 최대 요인이다. 매체가 종이에서 ‘화면’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종이책은 ‘유저’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스마트 기기 사용자들은 책이 아니라 게임, 영화, 뉴스 등의 콘텐츠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자책으로 출판 콘텐츠를 옮아가는 비율도 미미하다. 현재 출판시장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무협지 등의 장르물과 ‘B급’ 콘텐츠가 주류를 이룬다. 출판 전문가들은 “어차피 독자들이 종이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출판 콘텐츠를 전자책으로 옮기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통적인 시장이 무너지면서 책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어려워진 것도 독자 수 감소를 불러왔다. 수많은 책을 볼 수 있는 ‘쇼룸’ 기능을 했던 오프라인 서점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종이신문 독자 수도 감소하면서 출판사가 책을 알릴 수 있는 통로가 줄어든 것이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책은 전통적인 ‘체험 상품’인데, 독자들이 책을 알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고 온라인서점 첫 화면에 노출시키기 위한 온갖 편법 마케팅이 심해지면서 출판시장은 혼돈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몫한 게 지지부진한 도서정가제 확립이다. 다행히 최근 최대 15%까지만 할인하도록 업계가 합의하긴 했지만 그동안 반값 할인 경쟁이 극심해지면서 출판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마케팅 비용만 올라갔다.

○책 안 읽는 국민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책을 덜 읽는 것도 문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국민 독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들의 하루 평균 매체 이용시간은 인터넷 2.3시간, 스마트폰 1.6시간인 데 비해 독서시간은 평일 26분, 주말 30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인들의 평일 독서시간은 23.5분으로 학생(44.6분)의 절반 수준에 그쳤고, 이에 따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2권으로 2011년에 비해 0.7권 줄었다.

전체 국민 중 1년에 1권 이상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독서율은 한국이 73%로 스웨덴(90%) 네덜란드(86%) 영국(80%) 등과 큰 차이를 보였다. 공공도서관 이용률도 한국은 32%로 스웨덴(74%) 핀란드(66%) 덴마크(63%)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국민들의 독서의식을 높여 출판사, 서점, 저자, 독자 등으로 구성된 출판생태계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 이유다.

서화동·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