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집 미니앨범 '신명나는 세상' 낸 최장수 MC 송해

아침에 활짝 피는 나팔꽃은 제 인생 꼭 닮아
80대에도 신명나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앨범 발매
고향 황해도 재령에서 노래자랑 녹화하는 게 소망
송해 선생은 “몸을 자주 움직이는 게 최고의 운동”이라며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건강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송해 선생은 “몸을 자주 움직이는 게 최고의 운동”이라며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건강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무엇을 찾으러 왔나. 무엇을 얻으러 왔나. 한 번뿐인 여행길, 허무한 욕심, 욕심일랑 생각을 말라. 행복이란 가슴에 있다~.”

최고령 MC 송해 선생(87)이 지난달 발매한 7집 미니앨범에 수록한 트로트곡 ‘신명나는 세상’은 회심(灰心)의 경지에서 무욕(無欲)의 삶을 노래한다. 코미디언이자 가수인 그는 6집까지는 남의 노래를 불렀지만, 7집에서 처음 자신의 인생을 담은 창작곡들을 들려준다. 송 선생은 “7집에 실린 ‘내 나이가 어때서’ ‘나팔꽃’ 등 3곡은 올여름께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34년 전 탄생한 국내 최장수 방송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에서 26년간 MC를 맡고 있는 그는 기업의 광고 모델과 단체의 주요 행사 진행자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후배 연예인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롤모델이기도 한 그는 “자기가 맡은 일에 개성을 불어넣어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비결을 털어놨다. 서울 낙원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새 앨범을 내놓으셨는데요.

“원래 노래를 즐겨서 6집 앨범까지 냈는데, 전부 남의 노래를 부른 거였어요. 7집에 실린 3곡은 모두 제 얘기예요. ‘나팔꽃’은 아침에 환하게 피었다 오후에 지고 다음날 다시 밝게 피는, 제 인생과 비슷한 꽃에 대한 거예요. 제 삶이 얼마나 남았겠어요? 신명 한번 내야지 하는 마음에서 앨범을 냈죠.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가 가장 불행했어요. 왜정(일제강점기)과 6·25전쟁을 겪고, 먹을 것 안 먹으며 경제와 산업을 일으켰지요. 그런데 요샌 60세만 돼도 경비로도 채용되기 어려워요. 반면 여든 살에도 짱짱한 분이 많습니다. 최근 양평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녹화했는데, 115세 할머니가 나왔어요.”

▷노래는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6·25전쟁 휴전 직후 악극단을 찾아갔지요. 원래 음악전문학교를 나왔거든요. 당시에는 노래만 해서는 밥을 못 먹었어요. 막간에 콩트를 하고, 연기도 했습니다. 악극단에서 생활이 어려워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자리를 메워야 했으니까요. 1960년대 초 라디오와 TV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코미디를 주로 하게 됐지요.”

▷방송 프로그램은 계절마다 개편되는데 ‘전국노래자랑’은 34년이나 지속되고 있습니다.

“1980년 시작할 당시에는 2년 정도 버틸 것으로 예상했어요. 전국 230여개 군을 한 번씩 다니면 끝날 것이란 얘기였죠. 그런데 웬걸, 지방이 시로 승격하거나 축제를 열면 저마다 우리를 초청했어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하기 좋은 프로그램이니까 사람을 모으고 홍보하기에 제격이었거든요. 해외 동포들도 와달라고 해서 미국, 중국, 일본 등은 물론 파라과이까지 다녀왔죠. 뉴욕 아이젠하워공원에서 녹화할 땐 1만4000명이나 모였어요. 최근에는 다문화 가정의 주부들이 자기 나라에 가잡니다. 앞으로 동남아에도 가야겠어요. 외국인 단골도 생겼는데, 미국 플로리다 출신의 한 흑인은 6년째 아내와 함께 방한해 녹화현장을 찾아옵니다. 트랙터 운전사인 그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함께 온대요. 그들 부부에게 한복을 선물했죠.”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뭘까요.

“나이와 직업이 다른 사람들이 출연해 사연을 얘기하는 것 아닐까요.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여성이 파마 머리에 한복을 입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볼거리가 많아졌어요.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을 보면서 ‘나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지난주 강동구 편에서는 700명이 신청해 15명을 추렸어요. 서울 인천 부산에서는 대개 1000명 이상 지원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예요. 국악신동 송소희를 비롯해 장윤정, 박상철, 김혜연 등이 모두 ‘전국노래자랑’ 출신이거든요.”

▷‘전국노래자랑’ MC를 탐내는 도전자들도 많을 텐데요.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상벽 씨가 제게 언제까지 ‘전국노래자랑’ MC를 할 거냐고 묻더군요. ‘오래 기다렸다’면서요. 그때 이렇게 받아쳤지요. 나도 후계자는 이상벽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50년만 기다리라고. 코미디언 임희춘 씨(대한노인복지후원회 회장)도 하고 싶다기에 ‘넌 동작이 느려서 안 돼’라고 말해줬죠. 연예계 후배들이 나만큼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고 부러워합니다.”

▷26년간 이 프로그램에서 MC를 유지하고 있는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모든 프로그램을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해요.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매번 뭔가 남겨줘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 저는 공부를 많이 합니다. 지방 녹화 때에는 반드시 하루 전에 가서 군수나 시장 등의 얘기를 듣습니다. 작가가 쓰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온천에도 들릅니다. 사우나에서 벌거벗고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요. 토요일 오후 1시에 녹화를 시작하지만 오전 8시에 현장에 가서 출연자들을 만나 장기를 살펴봅니다. 그분들에겐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라고 해요. 또한 출연자들을 안정시켜 줍니다. 프로가 아니라서 불안해하거든요. 노래를 하다 틀리면 나를 부르라고 해요. 녹화니까 다시 시켜줄 수 있다고요. 대본도 대여섯 번 읽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합니다. 출연자들을 소개할 때도 자꾸 변화를 주려고 애씁니다. 같은 말을 하면 재탕이거든요.”

▷요즘도 반주로 소주 한 병은 거뜬히 비운다고 들었습니다. 건강은 어떻게 지키시는지요.

“예전에는 서너 병도 거뜬했는데 요샌 한 병 넘으면 부담스럽습니다. 내 몸을 자주 움직이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합니다. 30여년 전 하루 3갑 정도 담배를 피웠는데, 위와 가슴 등에 병이 나서 입원했을 때 의사의 경고로 담배를 끊었어요. 의사는 과격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9층 빌딩을 하루 두 번 오르내리는 정도가 적당하다고요. 그때부터 전철을 탔어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운동을 합니다. 녹화차 지방에 가면 주변 사찰과 공원을 돌아다녀요. 거의 매일 사우나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냉폭포도 즐겨요.”

▷선생님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어느 모임에서 제게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가 오셨다고 소개하더군요. 처음에는 ‘이분이 날 놀리나’ 생각했어요. 최고 부자는 정 회장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분은 자신이 여러 가지 일을 이뤘다고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는 사람이야말로 최고 부자라는 거였어요. 아시다시피 정 회장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일을 이뤄낸다는 가르침을 주고, 수많은 업적을 남겼잖아요. 정 회장을 비롯한 모든 부자들에게는 남다른 생각과 노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조가 그분들로부터 경영권을 나눠 갖겠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회전의자’에 앉고 싶으면 열심히 노력하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모델로 출연한 IBK기업은행 광고가 지난해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한 광고로 조사됐습니다.

“3년간 모델로 출연하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IBK기업은행은 우리 국민 모두가 거래할 수 있는 은행이라는 거지요. 저는 기업하는 사람만 거래하는 은행으로 생각했어요. 광고 후 고객이 꽤 늘어났다고 합니다. 저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구나 생각하니 기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고향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하고 싶습니다. 재령은 교통도시이면서 곡창지대예요. 통일은 정치적으로는 불가능하고, 민간차원의 대화로써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민간 교류를 늘려야 합니다.”

■ 송해 선생은

본명은 송복희. 한국의 1세대 코미디언이자 가수 겸 MC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단신으로 월남해 육군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당시 정전(停戰) 소식을 가장 먼저 타전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제대 후인 1955년 ‘창공악극단’ 가수로 문화·예술계에 입문해 동아방송 라디오 ‘스무고개’에서 활약하며 인기를 얻었다. 1974년부터 17년 동안 KBS 라디오 교통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했다.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 등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구봉서, 배삼룡 씨 등과 함께 활동했다. 최장수 프로인 ‘전국노래자랑’에서는 1988년부터 MC를 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절친한 사이다. 그의 서울 낙원동 사무실 벽에는 신문에 실린 박 대통령 사진 수십 장이 오려 붙여져 있다. 양친을 잃은 박 대통령이 1980년대 초 아현동에 있던 새마음병원 총재였을 때 송 선생이 드나들던 연예인봉사단 사무실을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비련의 가족사를 지닌 박 대통령에게는 늘 연민이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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