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이소연 씨는 “당선작은 태교라는 행위 안에 숨어 있는 삶의 근원을 포착하려 노력한 시”라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2014년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이소연 씨는 “당선작은 태교라는 행위 안에 숨어 있는 삶의 근원을 포착하려 노력한 시”라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지난해 제가 한경 청년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라갔던 것 아세요? 작년 심사평에서 제 시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비수 꽂힌 듯 아팠어요. 하지만 결국 한경 심사평 덕분에 올해는 등단할 수 있었죠.”

2014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이소연 씨(31)는 지난해 심사평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기포의 방에’라는 시로 최종심에 올랐고 ‘이미지가 발랄하고 신선하지만 일부러 꾸민 듯한 작법이 눈에 거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맞는 지적이었어요. 지난해 다른 언론사 신춘문예에서도 최종심에서 떨어졌는데, 장점만 죽 나열하더니 결국 다른 걸 당선작으로 뽑더라고요. 허탈했죠, 하하. 한경 심사평이 결국 제가 발전할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올해는 결과가 달랐다. 심사위원(최승호·김기택·권혁웅 시인)들은 “이소연의 시는 단번에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고 입을 모았다. 당선작인 ‘뇌태교의 기원’은 태교라는 일상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시적 상상력을 세계 전체로 확장시킨 수작이다.

2010년 결혼해 세 살짜리 아들을 둔 그는 임신 기간 처음 느껴보는 우울함과 맞닥뜨렸다고 했다. 갇혀 있다는 고립감도 들었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책임감으로 극복했고 태교를 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그 과정을 시로 표현한 작품이 ‘뇌태교의 기원’이다.

“태교라는 행위 안에 있는 삶의 근원을 투시하려고 노력한 시예요. 어떤 현상 안에는 본질이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하는 버릇에서 나온 거죠. 뇌에 주름 하나하나가 새겨져 가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세상의 기원 아닐까요. 제 시를 이렇게 말로 설명해 본 적이 없어서 민망하네요. (웃음)”

경북 포항 출신인 이씨가 글을 쓴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쓰기 수업 시간에 달리기 출발 직전의 두근거림에 대해 쓴 산문이 어린이 계간지에 실렸다. 그 후 나간 백일장에선 번데기와 솜사탕을 먹으며 놀다가 마감 10분 전까지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산문을 쓰기엔 시간이 촉박해 시를 써 냈는데 그게 당선작으로 뽑혔고, 그때부터 시를 썼다.

그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의 ‘반쪽’은 올해 등단 7년차인 시인 이병일 씨. 남편은 지난해 창비에서 시집 《옆구리의 발견》을 발표했다. 부부 시인의 탄생이다.

“연애할 때 남편 고향(전북 진안)에 시부모님을 뵈러 갔어요. 그때 결혼을 결심했죠. 시아버님이 폐의 대부분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기어서 밭일을 하세요. 저희 온다고 흙투성이 몸을 이끌고 터미널로 마중 나오셨죠. ‘옷 더러워진다’고 한사코 손을 내젓는 시아버님을 정장 차림의 남편이 번쩍 들쳐 업고 가더라고요. 그 뒷모습을 보고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등단으로 남편과 부모님, 시부모님 모두에게 축하를 많이 받았다.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친정 아버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게를 드나들 때마다 친정 어머니한테 “시인 아빠 왔다”며 자랑한다고 했다. 시아버지도 폐수술 때문에 작아진 목소리로 “장하다”며 며느리를 칭찬했다. 남편은 자신이 등단했을 때보다 더 좋아하더란다. 그는 ‘눈치보지 않는 시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등단하기 위해 심사위원에게 맞춘 시를 써야 하나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면 오히려 좋은 시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저 자신에게 충실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요.”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2014 한경 청년신춘문예 - 시] 당선자 이소연 씨 "임신 때 만감 교차…태교의 상상력 詩로 표현"
심사평 음악이 깃든 전언과 정교한 문장 매혹적

나이 제한 탓에 응모작품 수는 여타 신춘문예에 비해 많다고 할 수 없었으나 뛰어난 작품들은 절대 적다고 할 수 없었다. 김선욱, 김선화, 박명린, 박세랑, 이소연, 임소라, 정수미의 시를 두고 고심한 끝에 최종적으로 다음 세 명의 작품을 두고 논의했다.

박명린의 ‘쑥 인절미’ 외 4편은 순결한 청춘의 기록이다. 자신을 ‘그대’에게 줄 인절미에 빗대는 마음이 그렇고, 밀어(密語)를 밀어(密魚)로 바꾸는 변환이 그렇고, 고백을 사랑과 동일시하는 시선이 그렇다. 그런데 청춘에는 본래 비교급이 없어서 자신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감상과 과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는 뜻이다.

김선화의 ‘홈리스 소행성’ 외 4편에는 단정한 말들 속에 풍요로운 사연을 쟁여 넣는 솜씨가 있었다. 사물들이 제 사연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시는 이미 다른 세계에 가 닿아 있다. ‘빛의 샤워’ 같은 작품은 이 응모자가 풍경과 사연의 이질동상(異質同像)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말들이 제가 가야 할 마지막 경지까지 가지 못했다. 결구 앞에서 자꾸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이 점만 보완한다면 곧 다른 지면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소연의 ‘뇌태교의 기원’ 외 4편은 단번에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음악이 깃든 전언은 아름답고, 정교하게 구축된 문장은 매혹적이었으며 다양하게 변주되는 어조는 화려했다. 그러면서도 과장도 과소도 없이 제가 가야 할 사유의 목적지에 정확히 이르고 있었다. 시편들이 고른 성취를 보이고 있는 점도 신뢰할 만했다. 좋은 시인을 만나게 된 기쁨이 크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최승호·김기택·권혁웅

시 당선작…뇌태교의 기원 - 이소연

은빛 잠을 수집하는 뇌의 바깥에는 조용한 산책과 쇼팽의 음악이 있습니다 나는 이 세계의 관념으로 머리카락이 자라는 시간을 좋아해요 덩달아 창을 물어뜯는 별자리의 감성을, 나무 위에 앉은 곤줄박이의 감정을, 마당 앞의 바위의 감상을 좋아해요

그때 뇌는 주글주글한 감성과 지성을 가공하고요 나는 뜨개질 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바늘코에 걸린 실 한 가닥으로 일요일 붉은 공화국에 대해 점을 치는 거죠

그러나 굴뚝이 아름다운 공장지대로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피해야 해요 뇌는 풍경을 쪽쪽 빨아 먹고 조금씩 단단해지거든요 참 연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면 뇌가 더디게 어제의 풍경을 음미할지도 몰라요

뇌를 호두알로 생각하면 위험해요 뇌는 오 분간의 육류를 꼭꼭 씹는 것을 황홀해해요 하지만 나는 핏줄과 신경, 눈 코 입을 위해 십 분간의 채식을 하지요 식물성은 아이의 성격과 눈동자의 색까지 결정하니까요

나는 감상적인 욕조 속에서 돌고래들의 꿈을 꾸고, 뱃속의 아이는 벌써 뇌태교의 기원을 생각하는지 양수를 동동 차네요

당선 통보를 받고… "출산 통해 한단계 더 성장"

시는 가슴을 통해서 몸으로 온다. 내 몸에 잉태된 시만이 다른 나를 뱉어낼 수 있었다. 하나의 사물을 가지고, 그러니까 시가 되고 싶은 이미지를 품고 끙끙 앓지 않고서는 단 한 줄의 시도 쓸 수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나는 시를 잉태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런 면에서 단 한 번의 임신과 출산이 나를 자라게 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당선 소식이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과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나는 문학만 공부했다. 그런데 시인이 되는 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자주 나약해졌고 잦은 패배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좀 단단해졌던 모양이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거침없이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

나의 따뜻한 지도교수이신 박철화 선생님과 이승하 선생님을 비롯해 중대 문창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내가 쓴 허접한 소설을 읽어주셨던 정지아 선생님과 신상웅 선생님께는 면목이 없다. 그리고 사랑한다. 문우들은 내 전화를 받아준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받아줬다. 정말 고맙다! 다들. 당선 소식에 나보다 더 기뻐해준 전인철 선생님과 양가 부모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의 사랑스러운 ‘1쇄 시인(아직 1쇄밖에 찍지 못한)’ 이병일과 아들 서진이에게 오랜만에 곰국을 끓여 먹이고 싶은 저녁이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시를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을 구원자라고 불러본다. 청년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지치지 않고 쓰겠습니다.

▷경북 포항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학·석사


2014 한경 청년신춘문예 심사위원 △시=최승호 김기택 권혁웅(이상 시인) △장편소설=은희경(소설가) 장은수(문학평론가) 김탁환(소설가) △시나리오=장철수(영화감독) 손정우(시나리오 작가) 강유정(영화평론가) △게임스토리=박상우 김양은(이상 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