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심 씨의 작품 ‘습기’.
정경심 씨의 작품 ‘습기’.
작품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닮은 점을 찾기 어려운 두 여성 작가가 한지붕 아래서 동시에 관객을 맞고 있다. 서울 소격동 옵시스아트 갤러리 1, 2층에서 나란히 개인전을 열고 있는 정경심·차혜림 작가 얘기다.

2010년 송원미술상을 받은 정경심(38)의 개인전 ‘화양연화(華樣年華)’ 출품작은 겉보기에 영락없는 서양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난히 선의 맛을 강조하고 있고 미완성작인 것처럼 군데군데 여백도 많다. 아크릴 물감을 썼지만 동양화의 제작 원리를 따랐기 때문이다.

투명 화병에 꽂힌 화려한 꽃을 망사무늬 뒤편에 묘사한 ‘습기’는 감추기 위해서 드리우는 망사가 역설적으로 감춰진 대상의 실루엣을 강조하는 것처럼 작가의 화려했던 젊음을 강조하고 있다. 속절없이 흘러갈 젊음이지만 그것을 영원히 고정하고 싶은 작가의 염원이 담겨 있다.

최근 각종 레지던시에 잇달아 선정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차혜림(34)의 개인전 ‘이루어지는 방, 원더월(Wonderwall)’의 출품작은 구축적인 구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씨와는 대조적이다.

조 마소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따온 ‘원더월’은 막연한 선망이나 구원의 대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자폐 공간 안에서 바깥과 소통하려는 작가의 염원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두꺼운 벽에 갇혀 바깥 세상과 소통하려는 시도는 마음속 염원에 그칠 뿐 진정한 소통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되레 좌절감만 쌓이고 자신만의 자폐적 세상을 강화해나갈 따름이다. “그동안 매달렸던 설치, 조각 등 입체작업에서 벗어나 변화를 주고 싶었다”는 작가는 이번에는 유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런 허망한 노력을 보여준다. (02)735-1139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