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은지아은네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진섭 목사가 이 마을 새마을지도자들과 함께 ‘새마을’을 외치고 있다. /서화동 기자
탄자니아 은지아은네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진섭 목사가 이 마을 새마을지도자들과 함께 ‘새마을’을 외치고 있다. /서화동 기자

19세기 말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미국 선교사들이 씨앗을 뿌린 한국 개신교는 1903년 원산대부흥, 1907년 평양대부흥 등의 발전 과정을 거쳐 1913년 11월 중국 산둥성에 해외선교사를 처음으로 보냈다. 개신교계 최고령 원로인 방지일 영등포교회 원로목사가 산둥성 5대 선교사였다.

그로부터 100년, 한국 개신교는 세계 169개국에 2만5000여명의 선교사를 보낸 ‘선교대국’이 됐다.

아프리카는 한국 교회가 역점을 두는 선교지다.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의 소강석 담임목사, 이종민·박요셉 목사 등과 함께 검은대륙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 현장을 찾았다.

“카리부(환영합니다)!” “새, 마, 을!”

지난달 29일 오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경제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 남서쪽으로 80㎞쯤 떨어진 프와니주 음쿠랑가군 은지아은네마을. 한국에서 온 방문객이 마을에 들어서자 400여명의 자라목족 사람이 마을광장에 모여 노래와 춤으로 열렬히 환영했다. 검고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아이와 허리가 굽은 노인들,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들…. 그중에 눈에 띄는 초록색 조끼를 입은 남자들은 새마을 지도자이다.

이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한 주인공은 아프리카에서 21년째 활동 중인 이진섭 목사(60·선교사)다. 마을사람들은 앞다퉈 이 목사와 껴안고 춤을 추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목사도 마치 오래 헤어졌던 가족이라도 만난듯 껴안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숙명론이 최대의 적…“우린 할 수 있다”

1992년 8월 탄자니아에 온 이 목사가 이 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 7월. 독일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한 지 50년이나 됐지만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사는 이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정신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로 정비였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에서 14㎞ 떨어진 은지아은네마을까지 사륜구동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 마을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도로공사는 나라에서 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나라 지도자들은 당신들 삶에 관심이 없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득했죠. 탄자니아처럼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을 갖지 못한 한국이 새마을운동으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났듯이 당신들도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설득에 마음이 움직인 주민들은 70대 노인까지 도로공사에 나섰다. 중장비 없이 오직 삽과 괭이 같은 손장비로 한 공사였다. 그 결과 울퉁불퉁하던 길이 포장도로처럼 평탄하게 바뀌었다. 주민들은 버려진 하천부지 갈대밭을 개간해 밭벼를 심고, 잡초 무성한 풀밭에 옥수수 파파야 카사바를 심어 고질적인 식량난을 완전히 해결했고 지금은 연간 200 규모로 수출까지 한다. 지저분하게 방치됐던 시장터는 깨끗하게 정비된 가게들로 탈바꿈했다. 새마을회관도 새로 지었다.

마을 사람 중 7명은 2009년부터 매년 1~2명씩 한국으로 새마을연수를 보냈고, 새마을운동중앙회가 이들을 도왔다. 새마을 연수를 다녀온 마을 대표 오말리 사이디 무탕고(48)는 “한국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주민과 하나 돼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었다”며 “한국에서 배운 것을 다른 마을에도 전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빵 대신 벽돌을”…인재 양성

이 목사가 탄자니아를 위해 벌이는 또 하나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있다. 다르에스살람 외곽 키감보니 신도시 지역에 125만여㎡의 땅을 확보해 조성 중인 탄자니아연합대(UAUT)다. 지난해 9월 개교한 UAUT는 현재 공과대학, 경영대학을 운영 중이다. 2017년까지 의대, 법대도 설립할 계획. 개교 첫해라 학생이 6명에 불과하지만 2017년까지 2000명 이상으로 늘려 탄자니아의 변화를 이끌 인재를 육성한다는 목표다.

UAUT에는 대학뿐만 아니라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들어선다. 대구 동신교회 후원으로 동신기술학교도 운영 중이며 국제학교도 설립할 예정. 대학 졸업생은 한국으로 보내 인턴십을 제공한다. 산학연계를 통해 졸업생의 일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교수와 교직원 등으로 동참한 36명의 면면은 놀랍다. 열린사이버대 총장을 지낸 장성근 순천향대 명예교수(69)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아프리카를 위해 살겠노라며 총장을 맡았고, 조도현 부총장(67)은 아주대 교수로 35년간 일하고 정년퇴임 사흘 만에 탄자니아에 왔다. 이성구 공학박사(61), 장상호 전 서울나우병원장(60),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권용구 박사(39), IT 벤처기업을 운영했던 최규연 선교사(50) 등 명문대 출신 실력파들이 안정된 삶을 버리고 아프리카를 찾았다.

이 목사는 “이제 갓 시작한 대학이라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산학협력을 통해 한국 기업들이 탄자니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에 진출할 때 도움을 주고받는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개신교 선교사가 이슬람 교인들 이끈 비결은

주민 3800여명의 99%가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인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은지아은네마을에서 개신교 이진섭 목사가 어떻게 새마을운동과 교육사업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목사는 “종교를 앞세우지 않는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예배당을 세우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부터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30여개의 우물을 파고, 안경을 공급하고, 창궐하는 에이즈와 성병 치료에 앞장선 것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는 “선교사가 종교를 앞세우면 이들을 신자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란 아무런 대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 목사가 자신의 집을 세 차례나 턴 떼강도를 용서하고 돈 때문에 자신을 등지고 오히려 고소까지 한 제자를 다시 받아들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다.

개신교 목사지만 마을 발전을 위해서는 기독교와 이슬람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가 “기독교인들이 ‘아멘’이라고 할 때 무슬림은 ‘아미나’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이 맞다”며 갈채를 보냈다.

그는 다른 선교사들에게도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강요하지 말고 그 하나님을 행동으로 보이라”고 조언했다. 탄자니아는 개신교 천주교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 엇비슷한 데다 160여개 부족마다 토속신앙을 가지고 있어 종교를 앞세운 접근은 위험하기만 할 뿐 성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르에스살람(탄자니아)=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