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직장인 겸업…'짜파구리' 인생이죠"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우리 삶을 위해 준다고 큰소리치는데, 도시 직장인의 애환을 대변해 주는 시인은 없을까. ‘샐러리맨 시인’ 윤성학 씨(사진)가 7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쌍칼이라 불러다오》(문학동네)는 이 아쉬움을 말끔히 해소해준다. 윤 시인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을 소재로 깊은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짜증 나는 교통체증도,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도 그를 통해서라면 모두 애잔한 시가 된다.

‘늦도록 막혀/차간 거리 좁히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그어놓은 금에 가 서는 것/교통이란/길 위의 금을 따라가며/끊임없이 누군가의 뒷모습과 이야기하는 것/그들의 뒤꿈치를 따라/나도 누군가에게 뒷모습으로 정체되어 있었다//오늘도 끝내 누구와도 마주서지 못했다/이 길을 오래 다닌 사람들이 말하기를/결국 교통이란 자신의 몸을 세워둘/네모 칸 하나 찾아가는 일/(…)/원주율의 속도로 걸어들어와 좁고 선득한 나의 방/문을 여니/먼저 와서 의자에 앉아 있던 방의 주인이 얼굴을 돌린다/그리하여 오늘 단 한 사람과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았다/형광등 불빛이 채 다 밝아지지 않은/하루가 스러지기 겨우 3분 전 즈음에’(‘57분 교통정보’ 부분)

윤 시인은 1997년 농심에 입사해 16년을 일한 현직 홍보팀 차장이다.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과장으로 승진한 2006년에 첫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를 발표했다. 시인보다는 직장인으로 더 오래 살아 온 그는 두 직업을 갖고 사는 일을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에 비유한다. 전혀 다른 두 이름이 만나 새롭고 특별한 맛이 난다는 얘기다.

바쁜 직장 생활로 시 쓸 시간이 없을 법도 하지만 그에게는 일상이 모두 시의 소재다. 표제작 ‘쌍칼이라 불러다오’에서 그는 지게차 작업을 ‘쌍칼잡이’의 공격에 비유한다.

‘쌍칼,/그의 결투는 잔혹하다/어지간히 무거운 상대라도/높이 들어올리면/전혀 맥을 추지 못한다/지게차의 작업은 그렇게 냉정하다/일말의 동요도 없이/두 개의 칼날을 밀어넣는다/아무 표정 없이 들어올린다/(…)/그를 오래 보고 있으면/결투의 원리를 알 것 같다.’

미끄러운 낙지도 시의 주제다.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안 잡히는 것도 없이 ‘뻘밭’을 오가는 것 같을 때 그는 “낙지 먹으러 가자”고 권유한다.

‘자꾸만 걸음이 엉켰다 풀어지기를 되풀이할 때/K형, 산낙지 먹으러 가자/손끝에서 자주 미끄러지는 미래 때문에/또 한번 낙담하거나,/겨우 입안에 넣은 희망이/삼켜지지 않고 들러붙더라도/또다시 고개 떨구지는 말자’(‘낙지선생 분투기’ 부분)

애잔한 도시의 삶을 노래하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 것도 미덕이다. 직장인의 고질적 애환인 ‘갑을관계’를 재치 있게 풀어낸 시 ‘남자는 허리다’는 그의 유머감각을 잘 보여준다.

‘힘을 부려 누군가를 움직이려 할 때/내가 1이었던 적이 많았다/고개 숙이고 몸을 굽혀/깊숙이 들어가는 법을 몰라 뻣뻣했다/허리가 성치 못했다/나랏말씀의 첫 자음이 몸을 굽히고 있는 이유/(…)/빳빳이 서서 함부로 굴다가/언제 한번/제대로 끊어질지 모른다/남자, 허리.’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남다른 시선과 함께 그의 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아련하게 남는 여운이다. 우리 삶을 살 만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영구치’와 닮았다는 것 때문 아닐까.

‘단 한 번 받은 것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있다/단 한 번 잃었을 뿐인데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영구치’ 전문)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