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문고 앞 400여명 팬 250m 줄 늘어서

23일 새벽 1시 반부터 영풍문고 종로 본점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오전 9시가 되자 400여 명이 인근 SK빌딩까지 250m가량 줄을 늘어섰다.

이날 10년 만에 새 앨범을 내는 조용필(63)의 19집 '헬로'(Hello)를 사러 온 조용필의 팬들이었다.

조용필의 팬클럽인 '위대한 탄생' '미지의 세계' '이터널리' 회원들은 이곳에서 조용필의 친필 사인 CD 450장을 선착순 판매한다는 소식에 열일 제쳐 두고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전환되면서 음반 시장 침체기를 맞은 상황에서 음반매장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은 가요계에서 일대 '사건'이다.

앞서 서태지의 새 음반을 사려고 팬들이 음반매장 앞에 줄을 선 적은 있다.

하지만 올해로 데뷔 45주년이 된 환갑이 넘은 가수의 음반을 빨리 듣고 싶어 전국 각지에서 중장년 팬들이 움직였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이 줄의 맨 앞에 선 팬은 소방관인 김기태 씨. 그는 하루 휴가를 내고 새벽 1시30분에 도착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창밖의 여자'가 나왔던 고교 1년 때부터 팬이었어요.

아내도 팬클럽 '미지의 세계' 회원이죠. 아들도 팬이 됐고요.

(온라인에 먼저 공개된) 19집 수록곡 '바운스'는 충격이었어요.

회사의 젊은 직원들도 신선하다고 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조용필 씨가 50년, 60년 팬들과 계속 소통해줬으면 좋겠어요.

"
팬들은 수시간 동안 줄을 서는 고생도 잊은 채 '바운스'를 틀어놓고 함께 감상하는가 하면 '조용필 짱'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흔들며 응원했다.

이 줄 가운데에는 엄마 손을 잡은 초등학생도 눈에 띄었다.

경남 김해에서 온 김경애(46) 씨는 "열살인 딸과 함께 어제저녁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와 하룻밤을 자고 오전 6시 여기에 왔다"며 "'창밖의 여자' 때부터 팬이었고 딸은 태어날 때부터 팬이다.

딸도 '조용필 오빠'라고 부른다"고 웃었다.

김씨는 "딸이 지난 2003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조용필 오빠의 공연에서 꽃다발을 전달한 인연도 있다"며 "오늘 저녁 오빠의 쇼케이스에도 간다.

딸이 '행복한 체험학습'을 이유로 결석하고 왔는데 이보다 더 의미있는 경험이 있겠는가.

영풍문고의 약자가 YP인데 오빠의 이니셜과 같아 신기하다"라고 덧붙였다.

줄 가운데 주저앉아 음악을 듣는 20대도 있었다.

경기 파주에서 왔다는 오동근(21) 씨는 "부모님이 조용필 씨의 팬"이라며 "부모님께 효도 선물을 하고 싶어 줄을 섰다"고 했다.

오씨는 이어 "옛날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바운스'를 듣고 요즘 음악 같았다"며 "가사에 옛날 정서가 담겨 있었지만 지금 젊은이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노래였다"고 설명했다.

팬들은 한결같이 조용필 음악의 신선함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에서 새벽 4시에 왔다는 이현아(46) 씨와 김종미(43) 씨는 "어린 시절 반했던 오빠의 목소리 그대로여서 19집을 들을 생각에 너무 두근거린다"며 "고교생들이 길거리에서 '바운스'를 흥얼거려 무척 뿌듯했다.

CD를 사는 40-50대 팬들에게는 축제 같은 일이다"고 소녀처럼 좋아했다.

조용필 기획사인 YPC프로덕션도 팬들의 이같은 호응에 고무됐다.

기획사 관계자는 "마치 조용필 씨의 한창때인 1980년대 팬들이 음반을 사려고 줄을 섰던 때와 비슷한 풍경"이라며 "팬들의 정성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