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에 비친 리얼 예능의 현실



예능과 다큐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과잉연출이 문제"

SBS '정글의 법칙'의 진정성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박보영의 소속사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뒤늦게 알려지며 불붙은 논란은 누리꾼들의 추가 의혹 제기로 확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니냐는 동정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정글의 법칙'이 리얼리티를 강조해 온 만큼 시청자들의 배신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정글의 법칙' 계속되는 논란 = 진정성 논란이 불거진 이후 8일 방송에서도 논란의 불씨는 여전했다.

방송에서 결혼식을 올린 와오라니 족장의 아들 페드로가 유부남이자 야스니 국립공원의 가이드란 의혹이 방송 후 추가로 제기된 것.
누리꾼들은 페드로가 야스니 국립공원의 가이드로 활동 중인 사진과 글을 올리며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제작진이 베일에 싸인 야생 부족으로 묘사한 와오라니 부족도 여행사의 투어로 만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해외 여행사의 홈페이지에는 최소 2인 기준으로 6일간 600달러짜리 와오라니족 투어 상품이 올라와 있다.

8일 방송에서 전파를 탄 피라니아 사냥도 투어 코스에 포함돼 있었다.

이밖에 바누아투 편에서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던 말말족 주민의 말이 무색하게 말말족 투어 상품도 버젓이 인터넷에 소개돼 있다.

또 바누아투에서 출연진이 힘들게 등반한 야수르 화산과 밀레니엄 동굴도 30분 이내 차나 도보로 통과할 수 있는 투어 코스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제작진은 '조작은 없다'는 입장이다.

제작진은 지난 11일 입장자료에서 "최대한 전통문화와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부족들을 엄선해서 촬영했다"며 "이들 가운데 문명화, 도시화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들을 따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우리의 촬영의도와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질랜드 편 촬영을 마치고 귀국한 김병만 역시 11일 취재진과 만나 "관광코스는 모든 사람이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지만 우리는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든 길을 선택해 간다"고 해명했다.

뉴질랜드 편에 참여한 배우 정석원도 이튿날 트위터에 "해병특수수색대 2년의 추억에 맞먹을 정도로 행복했다.

손가락 열 개 다 걸고"라며 거짓은 없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와 관련해 SBS의 한 관계자는 "촬영분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일부 과장은 있을 수 있지만 조작은 없다"라며 "전체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왜곡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리얼리티 강조할수록 배신감도 커" = 논란의 배경에는 시청자들이 배신감이 자리하고 있다.

'정글의 법칙' 홈페이지에는 배신감을 토로하는 시청자의 글이 줄을 잇는다.

일부에서는 '정진요'(정글의 법칙에 진실을 요구합니다)를 만들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처음부터 100% 리얼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다면 시청자의 배신감이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예능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과잉 연출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경우"라고 분석했다.

연출이 불가피한 예능에서 리얼리티를 강조하다 보니 벌어진 사태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리얼리티를 앞세운 예능 프로그램의 조작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SBS '패밀리가 떴다'와 KBS '1박2일' MBC '무한도전'까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조작 및 왜곡 편집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SBS '짝'은 출연자들이 왜곡 편집을 주장하며 불만을 드러내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진정성을 앞세운 오디션 프로그램도 편집 논란에 취약했다.

지난 2011년 엠넷 '슈퍼스타K 3'에서는 예리밴드가 왜곡 편집을 이유로 숙소를 무단 이탈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최근에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 4'에서 열애설에 휩싸인 배우 오연서가 중도 하차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작진은 일정 문제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열애설로 불거진 진정성 논란이 중도 하차의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해외에서는 생존 전문가 베어 그릴스의 생존법을 다룬 디스커버리 채널의 '맨 vs 와일드'가 조작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현실과 연출 사이 '운영의 묘'는 = 이러한 현상은 리얼리티와 연출의 경계를 오가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예능 PD는 "리얼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연출은 피할 수 없다.

시청자들이 보는 것은 결국 포장된 리얼리티인 셈"이라며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연출을 인식하지만 리얼리티를 강조할수록 이해의 폭이 좁아지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방송 관계자들은 '100% 리얼'을 강조한 촬영이라 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한 지상파 교양 PD는 "오지 부족도 돈을 주고 섭외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돈을 주면서 특정 상황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제작진이 하기도 한다"라고 귀띔했다.

대형 자연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다큐멘터리라 할지라도 연출이 필요하기 마련"이라며 "프로그램 구성에 필요한 경우 현지인들에게 당시 상황을 재연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일정 정도 수준의 재연은 해외 다큐멘터리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덕현 평론가는 "시청자들의 배신감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라며 "이런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과장된 자막이나 연출을 자제하고, 필요하다면 해당 부분이 재연이나 연출이라는 사전고지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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