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엄쳐 나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러면 죽는단 말이오.” 탐미주의 소설로 유명한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화가가 되기 위해 처자식을 버리고 프랑스 파리로 떠나며 이렇게 말한다.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이 소설의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은 1874년 파리 주재 영국 변호사 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도 안돼 양친을 잃었지만 학업을 계속해 영국 런던 세인트토머스의대에 입학했다. 의대 경험을 토대로 한 처녀작 ‘램버스의 라이자’(1897)가 호평을 받자 의사를 포기하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 몸과 ‘달과 6펜스’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닮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그는 1900년대 들어 작가로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08년 ‘잭 스트로’ 등 그의 희곡 4편이 런던 4대 극장에서 동시 상연됐다. ‘인간의 굴레’(1915)에 이어 ‘달과 6펜스’(1919)가 연이어 히트쳤다.

다른 일에 대한 열망이 또 꿈틀거렸던 것일까. 1, 2차 세계대전 중 영화 ‘007’의 첩보기관인 영국 해외정보국(MI6) 요원으로 활동했다. 나치 암살 등 소문으로 떠돌던 활약상은 2010년 공개된 MI6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1차 대전 후 세계 각지를 여행하다 프랑스 남부 니스에 정착, ‘과자와 맥주’ 등 많은 작품을 내놨다. 1958년 평론집 ‘시점’을 끝으로 절필했다. 1965년 12월16일 91세로 눈을 감았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