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이 국내 뮤지컬 시장 1000억원 시대를 열었는데, 올해 흥행작인 ‘위키드’는 우리 시장이 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줬습니다.”

한국 뮤지컬의 산업화를 이끈 1세대 프로듀서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53)는 “서울이 아닌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에 공연 인프라를 다지면 한국 뮤지컬 시장이 두 배 이상 커지고, 4조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낼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10년 넘게 1주일에 3~4일 씩 비행기로 지구촌을 누벼온 ‘뮤지컬계 미다스의 손’을 서울 논현동 설앤컴퍼니 사옥에서 만났다.

설 대표는 국내 공연시장 규모가 30억원밖에 안 되던 시절에 제작비 120억원을 들인 ‘오페라의 유령’으로 192억여원의 매출 신기록을 세웠다. 올해는 제작비 200억여원 규모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를 들여와 3개월 만에 20만 관객을 모으며 ‘오페라의 유령’이 세운 기록(3개월간 19만 관객 동원)을 깼다.

7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개막하는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내한공연’도 내년 1월 말까지 표가 매진됐다.

▶‘오페라의 유령’이 이렇게 오랜 세월 사랑받는 비결은 뭘까요.

“클래식의 힘이죠. 음악이 클래식이기 때문에 세대를 아울러 몇 백년이 지나도 사랑받을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클래식이라는 강력한 힘 위에 엔터테인먼트가 접목돼 분위기는 어둡지 않으면서 감동은 오래 가죠. ‘오페라의 유령’은 지난해 25주년을 맞았어요. 이런 작품은 드물죠. 사람 나이로 따지면 250세 정도 된 건데, 300년 된 오페라 역사와도 맞먹을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앞으로도 20~30년 이상 거뜬히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믿어요.”

▶최근 ‘위키드’까지 뮤지컬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라이선스를 사와 한국어판 공연을 펼치고, 오리지널팀 내한공연으로 관객의 눈높이가 한껏 높아져 있지만 정작 우리 것이 아니라는 고민이 있습니다. 언제쯤 우리가 ‘위키드’ ‘오페라의 유령’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이 끊이질 않죠.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 자신감이 떨어지지만, 저는 항상 눈앞에 있는 작은 목표부터 해결합니다. 우리나라가 콘텐츠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극장 등 인프라 구축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해요. 앤드루 로이드 웨버, 카메론 매킨토시도 콘텐츠 창작자로 시작했지만 결국 극장을 갖고 있어서 안정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위키드’가 막을 내린 지 얼마 안돼 ‘오페라의 유령’을 올리는군요.

“연쇄적으로 폭발시켜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뮤지컬 한 작품을 흥행시키기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시장 폭이 넓어진 데다 ‘위키드’도 ‘오페라의 유령’도 폭발력이 큰 작품입니다. 서로 성격은 다르고요. 이 둘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데 너무 오랜 간격을 가져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작품마다 개막하는 시점에 담당하는 제 역할이 따로 있다고 보는데 ‘위키드’는 그 역할을 충분히 했습니다. 우리 뮤지컬 시장이 품질의 발전 속도에 비해 인건비 상승 속도가 너무 빨랐고, 작품의 질에 비해 투입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상황이었죠. 모든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대작을 합리적인 가격에 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고, 거기에 ‘위키드’가 딱 맞았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위키드’가 지펴놓은 뮤지컬의 흥행 분위기를 타고 또 한번 잘 만든 뮤지컬의 희열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전설적인 고전 콘텐츠입니다.”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뮤지컬 마케팅 전략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들여올 때는 나라 전체가 암흑기였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에서 막 벗어났지만 다들 움츠리고 있었고, 정치와 경제 모두 침체기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대성공은 한 줄기 희망의 빛과도 같았죠. 마케팅 역시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고급화 전략을 써서 차분히 밀고 나갔고, 대중은 열광했어요. 올해 ‘위키드’의 전략은 정반대였습니다. 너무 많은 뮤지컬이 난립하고 있었고, 스타를 쫓아오는 얄팍한 관객층이 대부분이었어요. ‘위키드’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흥행코드를 갖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전방위 마케팅을 펼쳤어요. 성공은 확신했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큰 사랑을 받은 것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대형 제작자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격세지감 그 이상이에요. 2000년대 초반에는 이메일을 보내도 답이 전혀 돌아오지 않았고, 직접 찾아가도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뮤지컬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산업이지만, 굉장히 폐쇄적인 비즈니스이기도 했어요. 백인들의 잔치였죠. 지금은 회사 앞으로 미국과 유럽의 대형 제작회사들의 정식 초청장이 수없이 날아들고, 신작 DVD도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미국, 유럽의 뮤지컬 산업 종사자들과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이제 친구를 넘어 가족같은 사람들이 됐어요. ‘신뢰 비즈니스’에서 점수를 많이 딴 게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한국인은 조금 더 좋은 조건이 눈에 보이면 그쪽으로 쏠려가려는 성향이 있지만, 상당수 외국인들은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해요. 누군가 우리의 라이선스 작품을 따내려 돈을 더 싸들고 미국에 갔다가 담당자로부터 ‘한국의 미스터 설을 찾아가 그와 대화하라’고 했다더군요.”

▶실패도 많았지요.

“실패를 많이 해본 사람은 성공할 확률도 높다는 말을 믿습니다. 1992년에는 집까지 팔아 제작한 ‘재즈’의 참패로 빚더미에 앉았고,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야외무대가 태풍 ‘매미’에 휩쓸려 죽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죠. 그때는 ‘하고 싶은 작품, 내 취향인 작품’만 고집했던 게 패착이었습니다. 대중은 결코 내 취향과 똑같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그걸 고집하려면 순수예술을 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철저한 분석과 치밀한 전략을 짜지 않으면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뮤지컬 분야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요.”

▶뮤지컬 프로듀서의 덕목은 무엇입니까.

“뮤지컬 기획자는 마라토너와 비슷합니다. 끈기와 인내, 자기와의 싸움이 중요해요. 한방을 노리고 100m 달리기를 하듯 이 분야에 뛰어든 사람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어요. 독불장군도 오래가지 못하죠. 팀원들과 호흡을 맞춰 한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리더십과 팀워크가 중요합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