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일상의 소중함
대한민국 사람들의 시계는 미래에 맞춰져 있다.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중·고교 시절은 책상맡에 묶어 두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취업전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청춘도 낭만도 서랍에 담아 놓는다. 사회에 나와선 승진을 위해, 가족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쥐어짠다. 미래를 볼모로 현재를 희생하는 삶, 이대로 괜찮은 걸까.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아워 타운’은 우리의 일생을 구성하는 건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 숨 쉬고 있는 나와 너, 우리의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아워 타운’은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더(1897~1975)의 퓰리처상 수상작. 1938년 프린스턴 맥카터 극장에서 시연한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는 1960년대 ‘우리 읍내’로 번안돼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극의 배경은 1901년 미국 뉴햄프셔 그로버즈 코너즈다. 시공간을 세계 어느 곳과 바꿔도 무방할 만큼 평범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침이면 엄마가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고, 동네 부인들은 마을 어귀에 모여 수다를 떤다. 방과 후엔 아이들이 숙제를 하고, 저녁에는 마을 여인들이 모여 성가대 연습을 한다.

연출을 맡은 한태숙 씨가 밝혔듯이 이 작품엔 특별히 인상 깊은 대사나 이야기가 없고 티끌 같은 스토리가 겹겹이 쌓여 있다. 1막 ‘일상생활’과 2막 ‘사랑과 결혼’까지 보다보면 도대체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극의 전개에 왜 필요할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그러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3막에 다다르면 마음속에 퍼지는 커다란 울림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극 중에서 아이를 낳다 죽은 에밀리(정운선)가 무대감독(서이숙)에게 부탁해 가장 평범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대목에선 망치로 쾅 얻어맞은 듯한 느낌까지 든다.

죽은 에밀리는 살았을 때로 돌아가기 원해 12세 생일로 회귀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어렵게 도착한 그곳에선 엄마도 아빠도 ‘서로 쳐다볼 시간도 없이’ 무심히 시간을 보낼 뿐이다. 에밀리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절규한다. “너무 빨라요. 모든 게 그냥 그렇게 지나가 버리는데 우린 그걸 몰랐던 거예요.” 그러면서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진가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이라며 쓸쓸히 묘지로 돌아온다.

이 작품에는 극을 총괄하는 무대감독이 등장한다. 무대감독은 ‘대놓고’ 극에 개입해 작품을 해설하고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주무른다. 의도적으로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넓은 관점에서 극을 관찰하고 자기 삶에 대입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극 중에서 이 마을에 생기는 큰 건물 밑에 ‘아워 타운’ 연극 대본을 넣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평범한 삶이 베르사유 조약이나 린드버그 횡단보다 중요하니까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