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모차르트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마법사’ ‘기적의 카라얀’ ‘지휘자들의 지휘자’로 불렸던 지휘자 카라얀(1908~1989)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카라얀 평전》은 그라모폰지 평론가인 저자 리처드 오즈본이 60년 동안 함께 일했던 이들과의 인터뷰와 기록보존소 문서에서 자료를 뽑아내 완성한 카라얀 평전이다.

저자는 카라얀의 음악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시대상까지 엮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동안 몰랐던 ‘인간 카라얀’의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20대 초반부터 지휘자로 이름을 알린 카라얀에게도 어둠의 시절은 있었다. 백수 시절 매주 주말 기차를 타고 시골 구석의 오페라 극장을 찾아 지휘나 연주를 하고, 다음날 새벽같이 올라오길 몇 달씩 반복했던 카라얀은 평생 기차와 기차역을 혐오했다.

청년 시절에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음악의 박자를 맞추는 기계음과 같다며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거리를 질주했다. 벤츠, 롤스로이스, 터보가 달린 포르쉐를 몰았으며 전용 비행기를 조종하기도 했다. 60세 생일을 맞았을 때 그의 새로운 장난감은 250㏄ 야마하 오토바이였다. 나이가 들어 제트기를 몰 수 있는 연령 제한에 걸리자 75세에 헬리콥터 조종술을 배웠다. 하지만 카라얀의 평소 생활은 검소했다. 여행을 할 때도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운 뒤 빵과 치즈, 맥주 한 병으로 끼니를 때우던 사람이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앓았던 치매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다. 여러 언어를 끊임없이 배운 까닭이다. 누군가 아무리 독일어로 말해도 카라얀은 상대방의 모국어로 대화했다. 왜 조종술을 배우냐고 물으면 “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악보 전체를 외워서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꼼꼼하고 완벽할 것 같은 그에게도 빈구석이 있었다. 카라얀은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다. 마술을 하듯이 선글라스 시계 구두 바지를 잃어버렸던 그는 비가 자주 내리는 잘츠부르크에서 우산을 자주 잃어버리기로도 유명했다. 성미가 급하고 신경질적이기도 한 카라얀은 생각이 말보다 앞서다 보니 말을 더듬기도 했다.

새로운 기술과 기계에 대한 흥미는 그의 음악 인생에도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클래식 음반의 역사는 EMI, 도이체 그라모폰, 데카와 함께한 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또 TV의 위력을 누구보다 일찍 간파해 오페라 영화도 촬영하는 등 1989년 7월16일 심장마비로 타계할 때까지 열정을 불태웠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