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 18계를 마스터하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사람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높은 36계를 마스터하면 나보다 낮은 수준의 사람이 와서 싸우려고 할 때, 그 사람을 위해 도망칩니다.’

스님의 트위트가 70만명을 울렸다. 혜민 스님의 트위터 글을 모은 에세이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올 상반기 12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출간 5개월 동안 70만부가 팔려나갔다. 중국 대만 일본에 판권을 수출하기도 했다.

혜민 스님은 미국 대학 교수가 된 한국인 승려라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UC버클리대로 영화를 공부하러 떠났다. 생활고에 시달려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시간을 지나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 석사, 프린스턴대에서 종교학 박사를 받고 현재 미국 메사추세츠 주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된 건 할리우드 배우이자 재가불자인 리처드 기어가 한국에 왔을 때 통역을 도우면서였다.

약 20만명의 팔로어를 지닌 ‘트위터 스타’ 혜민 스님이 트위터를 시작한 건 정작 스스로의 외로움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강의가 끝나고 텅 빈 연구실에 앉아 있다 보면 향수병에 걸린 것처럼 모국의 언어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고 고백한다. 그럴 때마다 일상생활 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트위터에 기록했고, 모국어로 대화해주는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큰 위안을 얻기 시작했다. 스스로 위안을 받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도리어 사람들이 스님의 몇 마디에 위안을 받았다는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혜민 스님은 “많은 청년들이 등록금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고용불안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과 많은 이들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통받고 외로워한다는 사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의식하며 초조한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상한다.

혜민 스님은 그때부터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우리 잠시 멈춰보자고. 과거를 반추하거나 불안한 미래를 상상하는 마음을 현재에 잠시 정지해놓고 숨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그렇게 항상 급하게 어디론가 가다 보면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잠언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님도 우리처럼 적지 않은 사랑의 아픔을 겪었고, 텅 빈 독서실에서 밤샘 공부를 해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동네 분식집에서 폭식을 해봤고, 또 불투명한 앞날 때문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는 경험이 글 속에 묻어난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일을 ‘나도 겪어봐서 잘 안다’는 스님의 투명한 고백들은 독자들에게 공감의 씨앗이 되기에 충분하다.

혜민 스님은 시인 칼릴 지브란의 팬이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며 보낸 긴 밤들을 지브란의 시로 마감했다고 한다. 어느 날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찾아왔던 첫사랑에 대한 고백도 이어진다. 엔야의 음악, 뤽 베송의 영화,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좋아했던 여인을 위해 좋아할 만한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하기도 했다. 혜민 스님은 지금 사랑의 감정 때문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서는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듯 밀고 당기기의 시간은 연애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밀당’은 두 사람의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밀당’의 기본은, 좋아도 잠시 참는 것입니다’라고.

누군가 “법정 스님처럼 큰 스님 되십시오”라고 말했을 때 “싫어요! 저는 혜민 스님이 될 겁니다”라고 했다는 일화에서 혜민 스님의 ‘행복론’이 그대로 전해진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