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무모한 남자가 있다. 철 지난 브로드웨이 공연을 도둑처럼 올렸다 내리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던 국내 공연계에 처음으로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뮤지컬 ‘더 라이프’를 들여온 사람. 더블캐스트, 트리플캐스트로 쉽게 돈 벌 수 있는데도 굳이 한 명의 주연이 뮤지컬 전체를 책임지는 원캐스트를 고집하는 사람. 연극 ‘엄마를 부탁해’ 재공연을 위해 연극 공연으론 유례가 없던 800석 규모의 대극장에서 두 달간 공연을 밀어붙인 사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부러 걷는 그는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50·사진)다. 뮤지컬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를 제작해 국내에 뮤지컬 붐을 일으킨 그가《세상에 없는 무대를 만들다》에서 무대 뒤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책에는 연극 ‘엄마를 부탁해’ ‘산불’, 뮤지컬 ‘아이다’ ‘맘마미아’ 등에 얽힌 에피소드가 생생하게 실려 있다. 연극 ‘엄마를 부탁해’를 만들 때 겪은 이야기를 통해 그가 무대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다. 박 대표는 원작자 신경숙 씨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직접 손글씨로 쓴 편지와 본인의 저서 ‘뮤지컬 드림’을 보냈다고 한다. 속도로 치자면 이메일이 훨씬 빠르지만 왠지 디지털 신호로 바뀌면서 마음이 탈색될 것 같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진정성’이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힘이다. 무대에 서달라는 박 대표의 부탁 한마디에 미국으로 장기간 휴가를 떠났던 배우 윤소정 씨가 다음날 비행기표를 끊어 돌아오고, 배우 김성녀 씨 역시 박 대표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무대에 선다.

“저는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에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사람이에요. 문화예술계 어른들을 가깝게 모시는데 그분들 모두가 저의 멘토죠.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 소통하면서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답니다.”

신시컴퍼니의 회사 운영방침도 독특하다.

“한마디로 직원들을 방임해요. 제가 하나하나 지적하면 실수는 줄여나갈 수 있지만 그 인재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막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조금 실수하더라도 기다려줘요. 그래서 그런지 10년 근속한 직원이 절반을 넘어요.”

공연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최근 뮤지컬 시장에 거품이 많이 끼었어요. 양적으론 팽창했지만 질적인 수준은 글쎄요. 공연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너도나도 뮤지컬을 만들겠다며 뛰어들고 있어요. 전 세계에서 한 배역에 5명까지 캐스팅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아이돌 스타를 쓰면서 출연료 부담을 관객들에게 전가하는 것부터 거품을 만드는 나쁜 문화죠.”

그는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의 로열티 문제도 꼬집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작품이 하나 올라가면 국내 기획사들이 그곳에 가서 작품을 따내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있고 우리가 가격을 점점 올려주고 있는 꼴인데, 이것 역시 위험한 거품이죠.”

박 대표는 2010년 특출한 작품이 나올 때까지 기존의 작품 외에 더 이상 라이선스 뮤지컬을 하지 않겠노라고 공언했다. 30년간 공연계에 몸담으며 가장 보람있었던 때는 언제일까. “뮤지컬 맘마미아를 계기로 중년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기 시작했어요. 공연이 끝났을 때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벅찬 행복감으로 ‘너무 재밌다’ ‘스트레스 확 풀었네’를 연발했을 때 온몸에 전율이 흘렀죠.”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