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개미집에는 내부 공기를 신선하게 유지시켜 주는 신비로운 환기시스템이 있다. 나미브사막풍뎅이의 날개는 공기중의 수분을 포집할 수 있어 생존에 필요한 물을 공급받는다. 얼룩말의 줄무늬는 기계적 통풍 장치 없이 표면 온도를 낮춰준다.

자연의 원리를 산업 분야에 응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연잎 표면의 과학은 자체 정화 기능을 갖춘 신소재 개발의 핵심 아이디어가 됐다. 가느다란 거미줄은 강철보다 튼튼한 방탄재킷의 소재가 됐다. 바닷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어의 피부 구조는 전신 수영복에 접목돼 수영 선수들에게 0.01초의 기적을 안겨줬다.

경제 성장과 환경 보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을까. 대한민국 1호 과학칼럼니스트인 이인식 씨는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인간중심 기술에서 자연중심 기술로, 녹색경제를 넘어 청색경제로 도약하는 해법을 제시한다. 38억년에 걸쳐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살아남은 생명 존재들에게서 새롭게 배워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 인류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것은 자연을 희생시켜 자원으로 이용하는 인간중심 기술이었다. 생태계 파괴가 심각해지자 인류의 미래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과학계와 경제계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왔다. 덜 쓰고 덜 생산하며 쓰레기를 줄이는 동시에 기업에 환경 파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녹색경제’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저자는 “녹색경제는 경제 성장과 상충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오히려 더 큰 환경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모색해온 저자는 한계가 분명한 녹색경제의 틀을 뛰어넘어 환경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자연중심 기술’을 소개한다. 자연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자연에서 해답을 찾는 ‘생물영감’과 생물을 본뜨는 기술인 ‘생물모방’과 같은 기술이다. 이 기술은 자연 전체가 연구 대상이기 때문에 생명공학, 생태학, 나노기술, 재료공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신경공학, 집단지능, 건축학, 에너지 등 첨단 과학기술의 핵심 분야를 아우른다.

또 저자는 녹색경제의 대안으로 ‘청색경제’ 시대가 개막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청색경제 이론가 군터 파울리는 “자연 생태계로부터 수많은 정보와 영감을 얻어 인간 생활에 활용함으로써 환경문제 해결은 물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며 “2020년까지 자연을 활용한 100가지 혁신기술들이 1억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1부에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자연중심 기술로 여겨질 만한 사례를 되짚어본다. 이카로스의 후예들이 자연의 지혜를 빌려 창조한 역사적 발명품을 소개하고 자연중심 기술의 개념과 의미를 분석했다. 2부에서는 자연중심 혁신 기술이 과학기술의 여러 부문에서 보여준 가능성과 연구 성과를 선보인다. 로봇공학 분야와 인공생명 분야의 연구동향도 상세히 소개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