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고나르의'추억'

계몽철학자 루소의 연애소설 '누벨 엘로이즈' 주인공 모티브
귀족의 딸과 평민 사이, 신분에 막혀 못이룬 사랑
안개 서린 파스텔톤 숲, 여인의 연분홍 치마로 가슴 떨리는 감정 담아내
[그림 속의 선율] 나무에 몰래 새긴 그 이름…지우지 못했던 젊은날의 연정

19세기 이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뭘까. 연애소설인 ‘누벨 엘로이즈’다. 1761년 초판이 나온 이래 40년 동안 70쇄 이상을 기록한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다. 출판업자가 제때 공급물량을 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몰이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저자가 계몽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1712~1778)라는 사실이다. 우리에겐 교육론인 ‘에밀’과 정치적 입장을 담은 ‘사회계약론’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당대인들에게는 연애 소설가로 더 유명했다. 책의 제목 ‘누벨 엘로이즈’는 중세의 신학자 아벨라르와 수녀원장인 엘로이즈 사이에 오간 정신적 사랑이 담긴 왕복 서간에서 따온 것이다.

‘알프스 기슭의 작은 도시에 사는 두 연인의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누벨 엘로이즈’는 루소 자신의 실제 연애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루소는 1757년 파리 근교 에르미타주에 있는 마담 데피네의 저택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거기서 친구 생 랑베르의 애인인 두드토 부인을 만난다. 루소는 이 20세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는데 둘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깊은 관계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루소 자신은 순수한 사랑임을 강조했지만 호사가들은 두 사람의 사랑의 수위를 놓고 쑥덕공론을 벌였다. 분명한 것은 루소가 이 젊은 여성을 ‘누벨 엘로이즈’의 여주인공 쥘리의 모델로 삼았다는 점이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알프스 레만 호수변의 작은 도시에 사는 귀족의 딸 쥘리는 가난한 평민출신의 가정교사 생 프뤼와 사랑에 빠지는 데 계급적 편견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쥘리의 마음을 이해했던 어머니는 딸과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염려하다 죽는데 쥘리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아버지의 강압적 의지에 굴복, 결국 사려 깊은 지주인 볼마르와 결혼한다. 결혼을 통해 새롭게 삶의 의미를 깨달은 쥘리는 볼마르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다.

볼마르는 장인에게 쫓겨나 각지를 방랑하던 생 프뤼를 불쌍히 여겨 그를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삼는다. 아내에 대한 젊은 날의 연정이 우정으로 바뀌리라 믿었던 것이다. 생 프뤼 역시 볼마르의 인품에 감동하여 끓어오르는 자신의 열정을 억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쥘리는 물에 빠진 아이를 건지다 병에 걸려 숨을 거둔다.

쥘리는 생 프뤼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이승에서는 사회의 미덕이 둘을 갈라놨지만 천국에서는 반드시 다시 맺어지기를 바란다며 그간 숨겨온 속내를 고백한다. “저는 여태껏 당신을 사랑해왔어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예요”라고.

‘누벨 엘로이즈’에 대한 당대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루소는 아마도 일반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최초의 작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연일 쇄도하는 독자들의 편지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소설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자신들이 느꼈던 고통과 쾌감, 눈물과 탄식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한 독자는 쥘리가 죽자 너무 슬퍼서 책을 다른 곳에 치워놓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고 또 다른 독자는 작품에 지나치게 몰입해 등장인물을 현실의 인물로 혼동하기도 했다.

이 책이 폭발적 반응을 얻은 것은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당대인들에게 감정적인 해방을 안겨줬다는 데 있었다. 도시문명에 염증을 느끼던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무대로 전개되는 가난한 평민과 귀족 여인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새롭게 성장하던 부르주아 계층의 욕구를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랑은 아름답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계율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 자유연애와는 거리가 멀다.

루소의 소설은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말 여류화가인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은 딸의 이름을 쥘리라고 붙일 정도로 루소에 심취했다. 로코코 미술의 대가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 역시 ‘누벨 엘로이즈’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대중의 기호를 읽어내는 데 있어 탁월한 감각을 지녔던 프라고나르가 이 책을 외면할 리는 만무했다. 1776년께 그린 ‘추억’은 바로 소설 속의 쥘리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그림을 보면 쥘리가 손거울의 손잡이로 고목나무 둥치 위에 영문 에스(S) 자를 쓰고 있다. 에스는 사랑하는 애인 생 프뤼(Saint-Preux)의 이니셜이다. 그의 얼굴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번민 탓인지 수심이 가득하다. 아무리 지우려도 지울 수 없는 사랑하는 이, 그러나 지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그 사랑을 영원히 추억하기 위해 그는 애인의 이름을 나무에 새기고 있는 것이다. 그 처연한 모습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 옆의 스페니얼 종의 애견은 시선을 주인의 애처로운 모습에 고정하고 있다. 주인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는 개는 곧 쥘리의 생 프뤼에 대한 일편단심을 의미한다. 어떤 비바람에도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나무둥치도 변치 않는 사랑의 표지다. 가슴 아픈 사랑이지만 그 사랑의 감정은 아름답다. 화가는 쥘리의 연분홍 치마를 통해 그녀가 사랑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은 살랑대는 섬세한 나뭇가지와 배경의 안개가 부드럽게 내려앉은 파스텔 톤의 숲에 잘 표현돼 있다.

이 작품은 자연으로 돌아가 도시문명 속에서 잃어버린 순수한 인간성을 되찾을 것을 호소한 루소의 자연주의 사상이 압축적으로 표현된 시각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과연 루소의 주장대로 인내해야 아름다운 것일까.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그림 속의 선율] 나무에 몰래 새긴 그 이름…지우지 못했던 젊은날의 연정

전통사회에서 여인의 팔자는 자기의 의지보다는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체적으로 꾸려갈 수 없는 예측불허의 인생. 그래서 여자의 일생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종종 불행한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다. 독일의 시인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1781~1838)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 도 그런 작품의 하나. 한 여인이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키우고 마침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며 행복에 젖지만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과부가 된다는 내용이다.

이 시는 낭만파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만(1810~1856)에 의해 연가곡(여러 개의 곡이 스토리 구조로 이뤄진 가곡)으로 작곡됐다. 첫 사랑의 번민을 그린 ‘그이를 만나고부터’, 애인을 예찬한 ‘누구보다도 뛰어난 그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한 기쁨을 그린 ‘나로서는 알 수 없네’, 어머니가 된 기쁨을 노래한 ‘가슴에 품어다오’ 등 모두 8곡으로 이뤄진 이 연가곡의 하이라이트는 약혼식을 앞두고 약혼반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펼치는 여심을 묘사한 네 번째 곡 ‘손가락에 낀 반지’다. 소설 ‘누벨 엘로이즈’와 줄거리는 다르지만 사랑에 빠진 여인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ㆍ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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