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 김춘수(1922~2004)는 ‘꽃’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고. 시인은 우리에게 한 송이 꽃으로 남았지만 그의 생각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이제는 넘쳐나는 정보를 갈무리해 이름을 불러줄 때다.

《큐레이션의 시대》는 ‘큐레이션(curation)’에 관한 책이다. 큐레이션은 정보를 수집하고 선별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공유하는 일을 말한다. 저자는 “수집되기 전에는 광대한 노이즈의 바다에 표류하던 단편적인 정보들이 큐레이터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으면서부터 새로운 가치로 빛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가 ‘하나의 몸짓’이라면, 큐레이터가 끌어 올린 정보는 ‘꽃’인 셈이다.

저자는 큐레이션이 빛을 발한 사례를 제시해 설득력을 더한다. 비주류 브라질 음악을 일본에 소개해 큰 성공을 거둔 프로모터, 이름 없는 노인의 낙서에서 예술을 발견한 작가, 정신병 환자들의 그림을 아웃사이더 아트로 끌어올린 정신과 의사들, 독자 참여로 기성 언론을 뛰어넘은 매체 ‘허핑턴 포스트’의 이야기는 굳이 큐레이션이란 개념으로 들여다보지 않아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콘텐츠가 왕이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큐레이션이 왕이다.” 저자는 한 미국인 블로그의 글귀를 인용하며 “1차 정보를 발신하는 것보다도 그 정보가 가지고 있는 의미, 그 정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 그 정보가 가지고 있는 ‘당신에게만 필요한 가치’와 같은 맥락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야말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한마디로 패러다임의 전복이다. TV·신문·출판·광고와 같은 매스미디어가 일방통행하던 시대는 가고, 트위터·페이스북·포스퀘어 등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의 정보를 유통시키는 거대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 그 위에 형성돼가는 무수한 정보의 비오톱(생물서식공간), 비오톱에 접속해 관점을 제공하는 무수히 많은 큐레이터, 큐레이터에 접속해 정보를 얻는 팔로어”가 서로 촘촘히 엮여 다양한 관점과 문화가 공존하는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 말한다.

또 저자는 “앞으로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과 ‘찾아내는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면서 새로운 작품, 새로운 분야를 함께 창조해가는 공동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인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