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가 이두식 씨 "그림에 氣·興 살려내려 새벽에 작업하죠"
“우리 전통 미감을 살려내는 데 무당굿, 명절, 혼례, 장례 등 잔칫날만큼 화려하고 좋은 소재도 없어요. 초기에는 풍경의 속성에 역점을 두면서 형태와 여백의 균형을 모색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우리 고유색인 흰색과 검정색을 중심으로 잔칫날의 흥취를 색채 기호로 축조하고 있습니다.”

오는 24일부터 내달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70번째 개인전을 펼치는 추상화가 이두식 씨(64·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사진).

그는 “고유의 무정형 형상과 즉흥적인 필치로 추상표현주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빨강 파랑 노랑 등 원색의 사용은 자제하고 있다”며 “앞으로 흑백으로 집약되는 선조들의 수묵정신을 되살리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수묵 추상은 지난해 5월 베이징 중국국립미술관 초대전에서 단초를 보인 바 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동양적인 여백의 미와 서예 필법의 담백한 농담에 흠뻑 빠져 있다”며 “색을 뺀 수묵 계열의 작품으로만 전시회를 꾸미기는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수묵 정신은 원래 몸과 마음이 하나로 통합되는 지고의 경지입니다. 동양적인 선의 미학과 서양적인 면의 미학을 연구하면 여백과 공간을 수묵 추상으로 승화시킬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그동안 오방색을 중심으로 작업했으나 색을 최소한으로 축약하고 극과 극의 보색들로 화면을 채운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간송미술관의 봄 기획전 ‘진경시대 회화대전’에서 겸재와 단원의 금강산 그림을 보고 호방한 필치의 미학에 뜨끔했다”며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한국적으로 변용하지만 항상 동양적 정신세계를 놓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캔버스 앞에서 장고(長考)하지 않는 그는 일필휘지로 색의 기운을 노린다. “기분이 언짢고 불쾌하거나 술 취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붓을 들지 않습니다. 가능한 한 맑은 새벽에 꼭 명상을 한 후에 작업을 시작해요. 그래야 제 그림을 보는 관람객들도 좋은 기분과 영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죠.”

감성적인 본능의 표출과 이성적인 힘을 동력으로 한 그의 그림이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까닭이다.

지난해 별세한 김창실 선화랑 대표와 생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이번 전시에서는 서편제 같은 맑은 소리와 우리 땅에서 나오는 정취, 산야의 시적인 운치를 변주한 근작 40여점을 만날 수 있다. (02)734-0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