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구글ㆍ애플 "차고서 사업 시작"…약자 이미지 내세우는 까닭
# 이라크 전쟁 당시 한 시민단체가 이라크에서 반전 시위를 하다 이라크군에 인질로 잡혔다. 이들은 자신이 비판한 미군에 의해 구출됐는데, 사건의 근본 원인은 미군의 불법적인 이라크 점령에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수개월간 자신들을 억류하며 동료 한 명을 살해하기도 한 무장단체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납치범들의 폭력 행위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이후의 점령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주장이었다.

# ‘아메리칸 아이돌’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TV 프로그램이다. 매주 3000만~5000만명의 미국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그러나 빌보드 차트에 오른 아메리칸 아이돌 톱10의 앨범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9년 우승자 크리스 앨런은 5000만표 이상을 얻어 우승했는데 그에게 표를 준 이들의 0.16%만이 그의 데뷔 앨범을 샀을 뿐이다. 같은 주 미국에서 화제를 모은 가수는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히로인이지만, 우승은 하지 못한 수전 보일이었다. 수전 보일의 데뷔 앨범은 발매 첫주에 300만장이 팔려나가 지난 16년간 발매된 데뷔 앨범 중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처럼 납치 희생자가 납치범을 옹호하고 구출해준 사람을 되레 헐뜯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토록 환호하던 TV 속 아마추어 가수가 정상에 오르자마자 외면하는 대중의 심리는 무엇일까. 미국 보수단체 티파티 패트리어츠의 전략가 마이클 프렐이 쓴 《언더도그마》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언더도그마’는 반사적으로 약자(언더도그)를 옹호하고 강자(오버도그)를 헐뜯는 태도를 말한다. 약자는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강자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고, 강자는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무조건적인 믿음이다.

언더도그마 현상은 낯설지 않다. 우리 삶 구석구석에서 작동한다. ‘타인의 불행은 꿀맛’이란 일본 속담처럼 강자를 끌어내리고,《신데렐라》스토리에는 열광하는 심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광고 카피에서도 언더도그마 현상이 보인다. 구글이나 애플이 작은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며 약자 이미지를 강조하는 게 대표적이다. 많은 정치인들도 자신을 약자로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도 언더도그마가 개입했다고 한다. 약자 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원하는 정치인의 태도와 주택 소유라는 소시민의 희망이 결합하면서 주택자금 대출이 확대되는 결과를 빚었다는 것. 대출금을 갚지 않은 대출자와 정부에 비난이 쏟아져야 마땅하지만 언더도그마주의자들의 조작으로 비난의 화살이 금융회사의 대출 사실에만 꽂혔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약자의 기분이 어떤지 알기 때문에 약자 편에 서기를 좋아하는 것”이라며 “전통적인 좌파, 우파 개념이 아닌 강자와 약자 사이의 힘의 축이 국내외 쟁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점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