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역사를 거울로 삼으니 세상만사 사필귀정
사마천이 궁형(거세)이란 수난을 딛고 끝내 완성한 《사기》. 총 130편 52만6500자의 이 방대한 고전이 현대 비즈니스 지침서로 거듭났다.

친구 이릉의 반란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잡힌 사마천이 죽음 대신 치욕적인 궁형을 택한 것은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역사서를 집필하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를 마음에 새긴 사마천은 20여년에 걸쳐 ‘창자가 아홉 번이나 끊어지는’ 고통을 이겨내고 역작을 완성했다. 16여년에 걸쳐 사기를 완역한 김원중 건양대 교수(사진)는 “사마천에게 궁형의 치욕이 없었다면 승자와 패자를 아우르는 인간학의 새 지평을 연 이 위대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 덕분에 2000여년의 시공간을 거슬러 험준한 세상에서 생존의 지혜와 성공 전략을 얻은 마흔여섯 명의 인물을 복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밭을 갈던 머슴에서 왕이 된 진섭, 진시황을 살해하려다 실패했던 형가, 인재 발굴의 귀재 여불위, 사람의 고집만은 고치지 못한다던 명의 편작 등 소설 같은 성공학 이야기들을 창업, 불굴, 소통, 용인, 전략, 처세 등 6가지 테마로 들려준다.

[책마을] 역사를 거울로 삼으니 세상만사 사필귀정
우선 놀랍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행동하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위해 단장한다”는 말이 기원전 97년에 나왔다는 사실부터 만리장성 관광객들 덕분에 ‘죽은 진시황이 살아 있는 13억 중국인을 먹여살린다’는 맛깔나는 비유까지, 책장을 넘기는 손이 쉴 새 없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명언을 남긴 진시황 편은 이 시대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도량형 화폐 문자를 통일한 천고일제(天高一帝)였음에도 탐욕과 교만, 자기과신으로 패망을 자초한 진시황을 빗대 구성원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섣부른 판단과 자기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 유방은 또 어떤가. 변방 출신의 야성미를 지니고 있던 진시황과 사나이다운 호걸의 풍모를 지녔던 항우와 달리 유방은 내세울 게 별로 없었다. 그러나 유방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간언을 잘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유방의 열린 귀를 보여주는 ‘고조 본기’의 한구절이 인상적이다.

“군막 속에서 계책을 짜내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판내는 것은 내가 장량만 못하오. 나라를 어루만지고 백성들을 위로하며 양식을 공급하고 도로를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만 못하오. 백만 대군을 통솔해 싸우고 이기는 것은 내가 한신만 못하오. 이 세 사람은 모두 빼어난 인재지만 내가 그들을 임용할 수 있었으니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오.”

전국시대 법가의 대표격인 상앙을 이야기함에는 독단적인 리더십의 폐해도 경고한다. 강력한 정책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세금제도를 정비해 공평과세를 실현하고 연좌제로 치안까지 확립했던 상앙이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만든 법에 걸려 죽고 만다. 망명길에 객사에서 주인이 요구한 신분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어이없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 이처럼 융통성 없는 카리스마형 리더는 목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조직원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공포를 남기기도 한다.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일까. 마지막 장에 배치한 공자의 애제자 안회 편에서는 ‘행복론’을 펼친다. 안빈낙도의 대명사라는 안회를 떠올리며 세상에 금이 세 개가 있다고 말한다. 황금, 소금 그리고 지금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