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크레센트 지하철역 승강장.대형 스테인드글라스 7점이 뉴요커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2006년 지하철역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공모한 김정향 씨(56 · 사진)의 공공 미술프로젝트 '꽃바퀴(Wheel of Bloom)'.빨강 노랑 주황 등 원색들이 둥근 기차바퀴처럼 맞물려 꽃이나 태양같이 빛난다. 이 작품은 브루클린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뉴욕 화단에서 30여년간 활동한 김씨는 내달 30일까지 '스피리토소(Spiritoso)'라는 주제로 서울 한남동 비케이갤러리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펼친다.

그는 "미국에서 작업한 작품을 고국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마음 속에 간직해온 고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야기를 동화 같은 작품으로 더 많이 빚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글로벌 아티스트로 성장한 그는 최근 국내외 공공프로젝트 작업으로 더 유명해지고 있다. 자연의 순환을 상징하는 동그라미나 선,점 등 기하학적 형상과 우연적인 효과의 반복,원색 등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일깨우겠다는 얘기다. 친근하면서도 경이로운 자연의 이미지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상상력과 만나 캔버스 위에서 점과 선,원 등 기하학적 형상으로 되살아난다.

'반짝임''달콤한 행복''9월의 밤''춤추는 석양' 등 서정적인 제목 역시 자연의 형상을 추상적으로 응축해낸 것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연못에 반사되는 이미지,안개 사이로 비치는 희미한 빛처럼 특정 순간의 경험과 기억들이 작품의 출발점입니다. 자연과의 교감을 붓질로 시도한다고 할까요. "

이처럼 때묻지 않은 자연을 추상적 언어로 살려내는 그는 "맑은 하늘,살랑이는 바람,햇빛에 빛나는 물방울 등 무수한 자연의 촉수들을 화필로 녹여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한 템포 쉬어가는 긴 호흡을 제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렵거나 작품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나 사회적 의미보다 '자연과 함께'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면 제 소임은 다한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과 자연을 위한 예술인 것이죠."

2009년 가을 뉴욕 다울링대 안토니오조르다노 화랑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김씨의 작품 앞에 서 있으면 마치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새로운 자연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평했다. 최근에는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경남 사천 LIG연수원 진입터널과 입구에 유리와 타일로 제작한 길이 47m의 대형벽화 '활짝 핀 채로',LIG 부산 사옥에 독일 특수유리에 그림을 그려 구운 뒤 LED 조명을 장착한 높이 7m,너비 9m의 '푸른 은색'을 각각 설치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