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장은 여간해서는 경기를 타지 않는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는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 국제컨설팅업체 맥킨지&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명품 시장 규모는 45억달러(4조8000억원).2006년 이후 매년 평균 12%씩 커지고 있다. 매출 규모로 치면 세계 최대 명품 시장인 일본의 절반 수준이지만 소비 성향만큼은 더 강하다는 분석이다. 가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명품 소비 비중이 5%에 이르러 4%인 일본을 넘어선 것.도대체 사람들은 왜 명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명품 브랜드 업체들은 어떻게 그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을까.

《샤넬 전략》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주제는 샤넬 브랜드 하나로 좁혔다. 설립자 코코 샤넬 일대기나 샤넬의 패션 노하우 등에 치중한 기존 샤넬 관련 책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샤넬사와 샤넬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에 초점을 맞췄다. 코코 샤넬이 활동하던 당시보다 그의 사후 칼 라거펠트의 샤넬에 더 많은 시선을 던졌다. 결론은 '엄청난 비밀'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오랜 역사와 정교한 기량을 지닌 브랜드가 지극히 기본적인 것을 빈틈없이 실천하는 견실한 자세'가 샤넬의 성공 비결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샤넬의 기업구조에서 성장의 주추를 찾는다. 샤넬은 옷 향수 가죽소품 화장품 등 종합 브랜드를 가진 독립 비공개 기업이다. 루이비통의 LVMH,까르띠에의 리치몬트,구찌의 PPR 등 대형 복합기업과 확연히 다르다. 그게 다른 브랜드가 누릴 수 없는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독립 비상장 기업을 고수하는 샤넬은 주주에게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할 수 있어 판매 확대나 이익 극대화 같은 일반적인 기업들의 가치보다 독창적인 브랜드 제품을 개발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코코 샤넬의 철학을 지키면서 혁신을 멈추지 않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1926년 처음 선보여 현대적 여성 의상의 원조가 된 '리틀 블랙 드레스',천의 질감이 거친 트위드 소재의 '샤넬 슈트',독특한 체인과 스티치를 곁들인 '샤넬백'은 여전한 '잇 아이템'이다. 옛날 디자인인데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샤넬의 전통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에 맞게 부분부분 미세 개선해 왔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30초에 한 병씩 팔린다는 향수 No.5도 그렇다. No.5의 성분은 향기조합에 성공한 90년 전 그대로다. 대신 용기 디자인을 조금씩 바꾸는 방식으로 변화를 줘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와 희소성을 강조하는 마케팅도 돋보인다. 샤넬은 향수 제품을 내놓는 명품 브랜드 중 유일하게 전속 조향사를 두고 있다. 유명인 이름이나 유명 브랜드를 붙인 향수가 연간 400종이나 생겼다가 사라지는 환경에서 No.5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1970년대 중반 하향곡선을 긋던 No.5를 되살리기 위해 일용품 가게 진열대에서 제품을 모조리 치운 것은 희소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좋은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전통 공방과의 협업도 샤넬 성공의 또 다른 비결로 꼽힌다. 샤넬은 외부 공방의 힘을 빌려 새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있다. 외부 기술자원의 활용은 어느 기업이나 다 하는 방식이지만 샤넬의 그것은 좀 독특하다. 샤넬과 외부 공방은 상하관계가 아닌 동등한 협업관계를 자랑하고 있다. 샤넬은 경영자원을 제공하고 공방은 기술을 공급하는 식으로 상호 강점을 살려 시너지를 내는 형태다. 샤넬이 관계를 맺고 있는 공방의 기술을 독점하지 않는 점도 눈에 띈다. 산하 공방이 타사의 작업도 수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공방의 기술은 샤넬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국가자산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저자는 "명품시장이 성숙해 '라벨'하나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게 됐다"며 "기업 철학과 제품 품질,그로 인해 생명력을 얻는 브랜드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기본을 중시하는 샤넬식 마케팅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