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보드 아티스트에서 감독으로 승격한 가장 큰 이유는 경청하는 태도였을 겁니다. 경청하면 상대방이 이해하는 부분을 알게 되고 그것을 제 머릿속의 이해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300명의 제작진이 동일한 목표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자연스럽게 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배우에게 슬픈 연기를 하라면 최악의 연기가 나오기 쉽지만 큰 실연을 당했을 때를 생각해보라고 권하면 자연스런 연기가 나옵니다. 이처럼 지시하기보다는 여건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

1억7000만달러를 투입한 할리우드 대작 애니메이션 '쿵푸팬더2'의 여인영 감독(39 · 미국명 제니퍼 여 넬슨 · 사진)은 16일 파크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 감독은 할리우드 메이저스튜디오의 첫 한국인 감독이자 드림웍스의 첫 여성 감독이다. 한국에서 개봉된 애니메이션 중 최다 관객(467만명)을 동원했던 1편에서는 스토리보드 팀장 격인 '헤드오브 스토리'를 해냈다.

그는 전작이 빅히트했기 때문에 압박감이 컸지만 스태프와 배우들의 도움을 받아 소화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전편을 넘어서기 위해 나름대로 차별화 노력도 기울였다. 기존 캐릭터들에 대한 깊이와 크기를 키웠다. "전편의 악당이던 타이렁(호랑이)은 그보다 더 강할 수 없는 강인한 캐릭터였어요. 이번에는 그 반대쪽으로 생각했습니다. 똑똑하고 빠르고 권모술수에 능해 오히려 더 위험한 캐릭터를 찾았는데 그것이 공작새였어요. "

2편에서 공작새 악당은 폭약을 발명해 중국을 장악하려고 시도한다. 무술 고수들은 그를 저지하려고 하지만 적수가 되지 못한다. 서양식 무기로 사무라이를 싹쓸이했던 '라스트 사무라이'의 애니메이션 버전 같다. 그는 여기에 암호랑이 타이그리스와 판다 푸의 러브스토리를 살짝 곁들였다. 거위 아빠에게 입양된 포가 출생의 비밀을 알면서 심적 고통을 겪으며 방황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포가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관객들에게도 내 안의 평화를 발견하도록 공감대를 이끌어낼 겁니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테마죠.내면의 상처를 극복하면 날아오는 포탄을 돌려줄 만큼 천하무적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또한 무술 세계를 다루지만 폭력성은 최대한 절제했어요. "

여 감독은 1972년 한국에서 태어나 4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갔다. 롱비치대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하고 HBO방송사에 입사해 1994년부터 1997년까지 6편의 TV시리즈 제작에 참여했다. 연출했던 TV 시리즈 '스폰'으로 에미상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다. 드림웍스에는 2003년 입사해 '마다가스카''신밧드-7대양의 전설' 등에서 스토리보드 작가로 참여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스피릿'에서 말 그림을 가장 잘 그렸다"며 "남들이 1주일간 그리는 물량을 이틀 만에 그려내 스토리보드를 짜는 데 가장 많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