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전쟁/로저 로웬스타인 지음/손성동 옮김/한경BP/420쪽/1만9800원
[책마을] 공룡기업 GM의 몰락 부른 '복지의 함정'

자동차산업이 활황이던 1950년대.유독 잘나가던 제너럴모터스(GM) 경영진은 근로자들의 파업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임금 인상도 부담스러웠다. 월터 루서라는 걸출한 노조 지도자의 지도 아래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임금을 인상하지 않는 대신 퇴직 후의 연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요구했고,양측은 이에 합의했다. 경영진 측은 50년 후를 내다보지 못했다. 이 합의가 향후 미국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를 수십 년 동안 결정지은 '디트로이트 협약'이다.

1960~1970년대를 거치면서 GM이 퇴직자들에게 부담해야 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GM의 현역 직원은 18만명인 데 반해 연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책임져야 했던 퇴직자 수는 40만명에 이르렀다. 111세에 생을 마감한 한 직원은 무려 48년간 GM으로부터 연금을 받아 생활했다. 이런 막대한 유산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GM은 1998년 부품 부문을 별개의 회사로 분리해 '델파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2009년 6월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복지전쟁》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던 미국의 복지 제도가 가져온 세 가지 치명적 사건을 폭로한다.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로 10년 넘게 활동해온 저자 로저 로웬스타인은 "공룡기업 GM이 몰락하고,뉴욕 지하철이 멈춰서고,샌디에이고 시가 파산한 배경에는 모두 복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복지의 덫'이 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공공부문에서의 위기가 일반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미국 뉴욕 주 산하의 공공기관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는 퇴직자들로 인한 재정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요금 인상이라는 꼼수를 써왔다. 결국 이 미봉책은 2005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뉴욕 시민들의 발을 묶어버린 파업으로 이어졌다.

샌디에이고 시는 이보다 더하다. 공화당 특유의 정치 문화로 시의 재정 문제를 세금으로도 해결하지 못하고 국회의원마다 '내가 당선되면 해결하겠다'는 공약으로 수년간 시민들의 입막음을 해왔다. 결국 시장이 두 번 바뀌는 등 재앙을 겪은 뒤에야 사태는 수습됐지만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책은 '복지 제도의 실패는 곧 미래 세대의 희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기업,공공기관,시 정부의 사례 등 세 부문으로 나누어 증명한다. 우리나라도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5년.200만명의 가입자와 30조원의 적립금을 바라보는 지금 미국 기업과 정부의 '복지 전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무상 급식,무상 의료,무상 보육,반값 대학 등록금 등 민주당의 이른바 '무상복지 시리즈'를 놓고 여야가 격돌할 때도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오고간 적은 거의 없다. 정치적 공약,경영진의 꼼수로 변질된 복지 문제가 '악마의 약속'이 되어 돌아온 미국의 사례가 남의 일 같지 않게 깊이 와닿는 이유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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