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문가 55인의 '책벌레' 독서 비법 소개
조선명문가 독서교육법 / 이상주 지음 / 다음 생각 / 340쪽 / 1만4000원
[직장인 필독서] '독서왕' 김득신, 노자傳 2만번 읽었다

선시대 독서왕을 꼽으라면 단연 김득신(1604~1684)이다. 김득신은 옛 글 36편을 읽은 횟수를 '고문삼육수독수기(古文三六首讀數記)'에 기록했다. 1만번에 미치지 못하면 아예 기록을 하지 않았다. 《사기(史記)》의 '백이전'을 무려 1억1만3000번 읽었다. 한유의 '사설(師說)'을 1만3000번,'악어문(鰐魚文)' 1만4000번,'노자전(老子傳)' 2만 번,'능허대기(凌虛臺記)'를 2만500번이나 읽었다. 정약용(1762~1836)은 "문자가 만들어진 이래 종횡으로 수천년과 3만리를 다 뒤져도 대단한 독서가는 김득신이 으뜸"이라고 평했다.

조선에 책읽기로 화제를 뿌린 김득신은 사실 '가문의 둔재'였다. 열 살 무렵 글을 익히기 시작했으나 돌아서면 잊어버리고,글을 떠듬거리며 알던 스무살 때 겨우 한 편의 글을 지었다. 김득신의 할아버지 김시회는 스물다섯 살에 문과에 급제했고,아버지 김치는 스무 살에 문과에 급제한 천재.양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 영웅으로 영의정에 추증된 김시민이다. 아버지 김치는 "공부는 꾸준히 하는 것이다. 과거가 목적이 아니다"라며 아들을 꾸준히 지켜보고 기다렸다. 주위의 믿음 속에 김득신은 독서를 계속해 쉰아홉 살에 문과에 급제하는 인간승리를 이룬다. 둔재로 태어났으나 끝없는 노력으로 당대의 시인이자 문장가로 인정받은 김득신.그는 미리 지은 묘지명에 이런 문구를 썼다.

'재주가 다른 이에게 미치지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나처럼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에는 이루었다. 모든 것은 힘쓰고 노력하는 데 달려 있다. '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은 조선 명문가에서 행해진 독서방법과 독서교육을 담고 있다. 모두 55명의 책벌레가 등장한다. 조선 명문가의 기준 중 최고 덕목은 문형(文衡 · 글을 평가하는 이).즉 대제학(大提學)의 배출 경험이다. 문형은 독서휴식제인 '사가독서(賜暇讀書)'의 경험이 결정적이다. 조선은 그만큼 독서를 제1의 덕목으로 봤다.

조선 최고 명가를 이룬 이경여 후손과 김창집 후손의 공통점은 사약을 받은 상태에서도 자손에게 독서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경여의 아들과 손자,증손자가 3대 연속 문형에 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3대가 사약을 받으면서 똑같이 '독서하는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라'는 당부를 했던 김창집 가문은 조선 중후기 사상과 정치를 주도했다. 사화로 죽음을 앞둔 김수항은 '독서하는 아이가 끊이지 않게 하라'는 유언을 아들 김창집에게 전했다. 김창집은 아들 김제겸과 손자에게,김제겸은 다시 아들 김달행에게 '독서훈'을 남겼다.

책엔 구체적 지침도 많다. 기대승(1527~1572)은 "책은 반드시 외어야 하고 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읽고 생각한 뒤 글을 짓는 게 순서다"라고 말했다. 홍대용(1731~1783)은 "독서할 때 처음이 가장 힘들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인내하면 열흘 안에 반드시 좋은 소식이 있다"며 '10일 고비설'을 폈다. 숙종의 명으로 문집 '미수기언'을 간행한 허목(1595~1682)은 모르는 게 있으면 반드시 묻고 무엇보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책은 또 취업과 성공만 좇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이경근(1824~1889)은 "무릇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려면 반드시 아버지나 형이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 그 후에 아이에게 공부할 것과 금지할 것을 말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며 '부모 모범설'을 설파했다. 정약용은 시험 위주의 공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학론4(五學論4)》에서 과거제도의 폐해를 비판하며 총명하고 재능있는 이들을 일률적으로 과거라는 격식에 집어넣는 교육제도는 개성을 짓밟아 서글프다고 했다.

유성룡(1542~1607)은 "요즘 서울의 젊은이들은 빠른 성공만을 원한다. 마치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처럼 빠르게 성공하는 기술만 찾는다. 옛 성현의 글이 담긴 책들은 다락방에 처박아두고,말을 도둑질해 시험 감독관의 눈에 띄도록 글을 지어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며 독서의 참뜻을 전한다.

조선 천재들의 공부법은 단순했다. 때와 장소와 조건을 따지지 않고 독서를 했다. 죽음을 앞에 두어도,전쟁 중에도,귀양지에서도 책을 놓지 않은 것.조선을 이끈 55인의 읽고 외우고 생각하는 독서법이 생생하게 들린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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