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축구, 밤엔 시낭송…이색 문학 행사
서울에서 390㎞.한국시인협회의 '글발'축구단(사진) 회원들이 지난 13일 경남 남해 공설운동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곳에서 현지 축구팀과 경기를 갖고 아름다운 남해의 풍광을 배경으로 문학행사를 열기 위해서다.

'글발'은 한국시인협회 소속 문인들로 구성된 국내 최초의 시인 축구단.이날 이건청 한국시인협회장을 비롯해 '글발'의 감독을 맡고 있는 채풍묵 시인과 김왕로 전윤호 박완호 우대식 서수찬 시인,자칭 치어리더인 구순희 최춘희 김지헌 심수현 하정임 등 여성 시인들까지 모두 32명이 함께했다.

경기 상대는 남해의 대표적인 아마추어 팀.25분씩 4타임으로 치르는 경기는 처음부터 팽팽했다.

박후기 이시백 김요한씨 등은 하루 전에 도착해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도 펄펄 날았다. '음주 후 경기'는 '글발'의 전통이기도 하다. 작년 제주도 경기에서도 새벽까지 무리를 하고도 평균 연령이 10세나 아래인 상대팀을 6 대 1로 제압했으니까.

가장 먼저 터진 골은 어이없게도 우대식 시인의 자책골이었다. 곧이어 김왕로 시인의 '글발' 첫 골이 상대 문전을 갈랐다. 골 결정력이 뛰어난 스트라이커 김왕로 시인은 항상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어느덧 이날 경기의 막바지.남해바다가 유자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글발'팀의 채풍묵 시인 등이 두 골을 추가해 남해팀과 사이좋게 3 대 3으로 경기를 마쳤다.

창단 당시 평균 연령 20대 시인들이 어느덧 4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지만 '글발'의 기량은 어떤 팀과도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을 정도로 향상됐다.

이건청 시인협회장은 경기 후 "'글발'축구팀은 한국을 대표할 만한 역량 있는 시인들로 구성돼 있고 오랫동안 팀워크를 다져왔다"며 "이들이 갖춘 축구 역량도 막강한 것이지만 젊음과 용기,상호 간의 시적 호승심이 한국 시 발전의 동인으로 확산돼 가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녁에는 한국시인협회가 '좋은 시 널리 알리기' 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연속기획 '길 위의 시인들'의 여덟 번째 행사를 최근 개관한 남해유배문학관(관장 김성철)에서 열었다.

유배문학관은 서포 김만중 선생을 비롯해 자암 김구,후송 유의양 등 한시대를 풍미했던 유배 문인들의 삶을 기리고 이들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이달 초 완공됐다.

옛 선비들의 묵향이 묻어나는 이곳에서 남해인과 어울려 시를 낭송하고 가을밤의 풍류를 즐기는 의미는 그래서 더 각별했다.

남해=김지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