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날고기를 좋아했던 연산군…냉면 배달시켜 먹던 고종…
흔히 잘 차린 밥상을 앞에 두고 "임금님 부럽지 않네"라고 한다. 귀하고 고급스런 음식 선물에는 으레 '임금님 진상품'이란 선전 문구가 따라 붙는다. 조선시대 왕들의 밥상은 과연 그러했을까.

《왕의 밥상》의 저자는 이에 대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라고 말한다. 당대 최고 권력자인 왕들의 식사는 당연히 최고의 재료를 가지고 만든 가장 화려한 요리임엔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 밥상을 보면 곰발바닥이나 제비집 같은 희귀한 요리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어느 임금을 막론하고 수라상의 마무리는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인 여염집 숭늉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왕이 묻는다. "요즘 계속 비가 없소?" 분명 감납물선(監納物膳 · 지방에서 올라온 식재료를 궐에 들이기 전에 그 신선도나 수량을 검사하는 과정)을 거쳤을 터인데 음식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옹원 제조로부터 해당 지역의 사정을 들은 왕은 '감선'(減膳)을 명한다. 감선은 나라의 변고가 있을 때 반찬 가짓수나 식사 횟수를 줄이는 것.고기 반찬을 먹지 않는 '철선'(撤膳),당파싸움을 다스릴 때 주로 쓰던 단식투쟁인 '각선'(却膳) 등과 함께 일종의 '밥상 정치'였다.

'장금이'의 존재에 관한 얘기도 눈길을 끈다. 드라마에서처럼 수라간 궁녀들의 막중한 역할에 대해서 저자는 다소 회의적이다. 《경국대전》의 관직 편제만 봐도 종6품에서 종9품까지 13명의 숙수(남자 요리사)가 있는데 일개 궁녀들이 왕의 음식을 도맡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임금의 식사가 공적인 행사에서 개인의 '끼니 때움'으로 바뀌어 가면서 내관과 궁녀들의 몫이 커졌다는 대목에서 드라마의 개연성도 열어두고 있다.

역대 왕들의 식사법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왕자의 난'으로 상처 입은 태조는 고기 반찬을 끊었고 '계약직' 임금이었던 정종은 동생의 의심을 살까 두려워 놀고 먹는 일에 열중했다. 연산군은 그 악명만큼이나 식성도 남달라 진귀한 음식은 무엇이든 갖다 바치게 하고 날고기를 즐겼으며,과식과 편식을 했던 정조는 식후엔 꼭 담배 한 대를 피우곤 했다.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 맛을 본 고종은 궁궐에 카페까지 차리고 대한문 앞 국수집에서 냉면을 자주 시켜 먹었다는 이야기에서는 조선 망국의 그림자가 보이기도 한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