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한 요리사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으로부터 영예의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주인공은 '세기의 요리사''요리의 교황'으로 불리는 폴 보퀴즈였다.

보퀴즈는 이날 자신에게 영예를 안겨준 대통령을 위해 만찬 테이블에 특별한 수프를 제공했다. 귀하디귀한 송로버섯을 주원료로 한 이른바 'V G E(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의 이니셜) 수프'였다. 새로 개발된 이 수프는 독특한 맛과 풍취로 곧 세계적인 음식이 됐다.

이 특별한 수프를 맛보려면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으로 가야 한다. 이 '요리의 교황'이 주재하고 있는 곳은 파리가 아닌 '요리의 수도' 리옹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의아해할 수도 있다. 다들 '그런 정도의 명성이라면 파리에 체인점 내서 떼돈을 벌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음식철학을 알고 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보퀴즈는 호사스럽고 높은 칼로리의 음식보다는 재료의 질과 신선도를 무엇보다도 중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고향인 리옹은 알자스 로렌 지역의 농산물,프로방스의 해산물,론강과 손강의 민물 생선이 집결되는 곳으로 이러한 조건을 어느 곳보다도 잘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다.

리옹은 이런 자연조건을 바탕으로 오래 전부터 요리 도시의 명성을 누려왔다. 이곳에서는 상류층보다는 부르주아,서민의 소박한 음식들이 발달했는데 이는 1532년 리옹에서 출판된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에서 라블레가 언급한 음식들만 해도 수십 가지인데 흥미로운 것은 잡고기나 소,돼지의 내장을 이용한 요리가 많다는 점이다. 곱창은 한국인만 먹는 음식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축의 내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살코기를 맘대로 먹을 수 없었던 서민들의 먹을거리였다.

리옹의 음식문화는 17세기 초에 본격적인 전기를 맞게 된다. 앙리4세가 이탈리아 출신의 마리 데 메디치를 왕비로 맞아들이면서 결혼식을 리옹에서 거행했던 것이다. 당시 다소 까칠한 성격의 새 왕비는 고국에서 요리사와 음식재료를 들여와 새로운 음식들을 선보였다.

이렇게 해서 선진적인 조리법과 아티초크 같은 새로운 식재료들이 프랑스에 전파됐다. 젤라토,즉 아이스크림이 들어온 것도,개인용 포크를 사용하게 된 것도,테이블 매너가 정착된 것도 이때였다. 프랑스의 음식 문화는 이렇게 이탈리아의 그것과 융합돼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러나 요리의 도시로서 리옹의 명성이 확고해진 것은 '아줌마들(레 메르)'로 불리는 여성이 운영하는 음식점들이 대거 등장하는 18세기 후반이다. 이 음식점의 주인은 대개 부르주아 출신의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부르주아 음식과 서민 음식을 결합한 요리들을 선보였다. 최초의 아줌마집은 1759년에 문을 연 '브리고스 아줌마네 집'인데 이 집의 간판 메뉴는 '비너스의 유방'이라는 낯뜨거운 이름의 요리였다. 여성의 유방 모양을 한 이 고기단자 요리는 총각 신세를 면하고 싶은 사내들이 먹으면 총각 딱지를 떼게 된다는 속설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아줌마 집의 전통은 20세기로 이어져 '브라제 아줌마네 집'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미슐렝 가이드의 별 셋을 획득하는 영예를 누린다. '요리의 교황' 보퀴즈는 바로 으제니 브라제의 문하생이었다. '라 부트'라는 음식점 주인이던 레아 아줌마는 '타블리에 드 사페르'라는 소 내장 요리를 잘했다. 그녀는 욕쟁이 아줌마로 더 유명했다. 리옹의 남자들은 그녀의 집에서 밥만 먹은 게 아니라 욕도 함께 먹었다. 이 아줌마가 한번은 동네 시장에 '연약한 여자가 잠자리에선 강한 법이니 조심들 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가 주위를 웃겼다고 한다. 혹시 욕쟁이 할머니의 원조는 프랑스가 아닐까? 하여튼 이러한 여성 요리사들이 쌓아 놓은 전통은 남성 요리사들에게 전수돼 오늘날 보퀴즈라는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이 탄생하는 바탕이 됐다.

리옹의 요리는 가지 수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간판 요리는 돼지고기 요리다. 전채로는 고급 육질의 돼지고기를 창자에 넣어 말린 소시지('소시송'이라고 부른다)인 '로제트 드 리옹'이 유명하며 메인디시로는 선지로 만든 순대에 설탕에 절인 사과를 곁들인 '부댕 오 폼므',돼지고기를 다져 넣은 작은 소시지인 '앙두이예트',돼지의 귀와 코를 잘게 썰어 창자에 넣어 말린 소시지 '사보데'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리옹 일대의 특산 와인인 코트 뒤 론이나 보졸레를 곁들이면 제격이다. 후식으로는 생 마르슬랭 치즈,설탕에 절인 아몬드를 박은 둥근 빵 '포뉴',설탕을 입힌 과자 '갈레트 오 쉬크르'가 입안을 즐겁게 해준다.

리옹의 전통 음식을 맛보려면 론강과 함께 도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손강 좌안의 옛시가로 달려가야 한다. 이곳의 중심인 생-장 거리와 그 사이로 난 미로 같은 골목길에는 전형적인 리옹 음식을 제공하는 업소들이 밀집돼 있다. 이 음식점들에는 레스토랑이라는 이름 대신 '부숑(bouchon)'이라는 간판이 달려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해외문화 기행] (16) '요리의 교황' 보퀴즈, 재료 고를땐 리옹만 찾는다는데…
'요리의 교황' 보퀴즈의 레스토랑 본점은 리옹 북쪽 10㎞ 지점에 있는 콜로뉴-오-몽-도르에 있으며 리옹 시내에 여러 개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음식의 도시에 왔다고 너무 먹는 데만 집중하지 마시길.음식말고도 주변에 명소들이 수두룩하다. 옛시가 좌측의 푸르비에르 언덕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노트르담 드 푸르비에르 성당이 웅장한 자태로 서 있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손강과 론강이 흐르는 리옹시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소화를 돕는 데 이만큼 훌륭한 시각적 디저트도 없으리라.

1837년 리옹을 방문한'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은 이런 말을 남겼다. "런던에는 22종류의 감자가 있지만 리옹에는 감자를 요리하는 22가지 방법이 있다. " 리옹에 대한 최고의 찬사인 동시에 프랑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다. 다음 바캉스에는 리옹으로 식도락 여행을 가보는 게 어떨까?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영화와 어린왕자의 고향…문화도 요리하는 도시

인구 47만명(교외 포함 130만명)의 리옹은 프랑스 제2의 도시다. 오른쪽에는 알프스 산맥,왼쪽에는 마시브 상트랄이라는 고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손강과 론강이 나란히 다리를 뻗고 있다.

'갈리아'로 불리던 로마시대 이래 프랑스의 북부와 남부를 잇는 통로인 동시에 이탈리아로 가는 관문이었다. 무역의 거점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상인들의 왕래가 많아 자연스럽게 금융업의 중심지가 됐다. 프랑스 최초의 은행인 '크레디리요네'는 이곳을 거점으로 19세기에 창립됐다. 특히 19세기에 프랑스 산업혁명의 중심지면서 방직공업으로 번영을 구가했다. 지금은 프랑스 전기 전자 등 첨단산업의 중심으로 도약을 계속하고 있다.

리옹은 프랑스 문화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프랑스 최초로 동양미술 박물관인 기메박물관을 창시한 에밀 기메가 이곳 출신이다. 리옹은 음식만 풍부한 곳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측면을 조리할 줄 아는 문화의 요리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