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겨울,김포공항엔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귀국.그러나 그는 들것에 실린 채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으로 돌아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7년 후,실어증에다 오랜 병세를 회복하지 못한 영친왕은 끝내 서거하고 말았다.

고종황제의 아들이자 순종과 의친왕의 이복형제인 영친왕은 불과 열한 살에 볼모가 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로부터 50여년간 일제의 침탈과 조국의 해방 등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그는 말 그대로 '손발이 묶인' 비운의 황태자였다.

1971년에 나온 책을 한 · 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재출간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은 '황실판 토지'라 할 만하다. 영친왕뿐만 아니라 침몰하는 왕조의 배에 동승한 주변 사람들의 얘기가 소설보다 흥미롭게 펼쳐진다. 40년의 시차를 보상할 만한 내용의 버전업은 없지만 군데군데 곁들여진 당시의 낡은 사진들과 구체적인 묘사로 인해 감동은 그대로다.

덕혜옹주가 영친왕처럼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될 것을 우려해 고종이 일제 몰래 조선인과 정혼시키려 했던 얘기,헤이그 밀사 사건을 주도했던 헐버트 박사가 '내가 묻힐 곳은 웨스트민스터가 아니라 한국땅'이라며 4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이 땅에 묻힌 눈물겨운 사연,김구의 임시정부가 국권 회복을 위해 상하이를 여행 중이던 영친왕을 납치하려 했던 일 등은 현장감 있게 읽힌다.

한국 정부가 구황실 재산을 국유로 돌리려 하자 소송을 권유하던 변호사에게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내 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는 평소 영친왕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의 가족과 대한제국 황실의 오랜 인연이 이 책에 구체성과 현실성을 더했다. 저자의 큰아버지는 고종의 오랜 시종이었고,부인 민덕임은 명성황후의 가문으로 덕혜옹주와 유치원 시절 동무였다. 저자는 신문사 도쿄특파원으로 영친왕을 처음 대면한 이후 그가 세상을 뜨기까지 귀국 등을 위해 헌신했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