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트 연주자 에마뉘엘 파후드와 지휘자이자 건반악기(하프시코드) 연주자 트레버 피노크,첼리스트 조너선 맨슨이 한국에 온다.

따로따로 만나도 반가운 세 명의 스타 연주가가 오는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데 뭉친다. 2008년 12월 예정됐다가 피노크의 갑작스러운 수술로 취소됐던 이들 라인업의 공연이 1년반 만에 성사됐다. 이들의 만남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세 가지를 들어보았다.

◆절충=원전연주(혹은 당대 연주,시대악기 연주)는 작곡가가 곡을 만들 당시의 연주 양식이나 악기를 채용해 그 분위기까지 재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청중에게 기존의 연주가 그냥 흰 종이 위에 검은 활자였다면,원전연주는 거기에 당대의 그림과 도해를 첨가한 백과사전처럼 두드러지게 다가온다.

그동안 바로크 시대를 재현하는 원전연주는 거트현(양의 창자 등으로 만든 바로크 시대의 현)이나 바로크 활을 채용한 시대악기로 연주해야 한다는 도그마에 갇혀 있었다. 요즘은 음량이 큰 스틸 현을 채용한 바이올린이나 현대 관악기를 그대로 연주하면서 양식상의 변화만 꾀한다든지,원전연주 스페셜리스트와 모던 악기 연주자가 만나 연주한다든지 하는 해석상의 열린 지평을 보여주는 연주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원전연주의 절충 현상이다.

아르농쿠르,호그우드,가디너,피노크,코프만 등이 이끈 시대악기 연주의 전성기를 보며 자라난 신세대 연주가들은 시대악기 연주와 현대 악기를 예전처럼 대립되는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솜씨 좋은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피노크는 모던 연주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자주 지휘하고 있고 파후드와 피노크가 협연한 바흐 플루트 음반(EMI)은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절충은 음악 해석에 더욱 다양한 경우의 수를 던져준다. 전대미문의 신체험을 가능케 한다.

◆명성=파후드는 '플루트의 귀공자'로 불린다. 외모도 그렇지만 그가 가로피리(리드 없이 입에 가로로 대고 부는 관악기)를 통해 발산하는 음색에는 고귀한 분위기의 아우라가 테두리를 치고 있다.

1970년 스위스 제네바 출신으로 5세 때 리코더를 시작하고 오렐 니콜레에게 배우며 브뤼셀 음악원과 파리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22세 때 아바도가 지휘봉을 잡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당시 111년 역사를 통틀어 최연소 플루트 수석으로 입단하면서 파후드의 명성은 시작됐다. 이후 베를린 필 플루트 수석 자리를 지키며,솔리스트와 체임버 연주를 병행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1950년대에 니콜레,1970년대에 제임스 골웨이가 있다면 1990년대 이후는 파후드가 있다는 평이 설득력을 지닌다.

영국 출신의 건반악기 주자이자 지휘자인 피노크는 아르농쿠르,호그우드,가디너,코프만과 더불어 원전연주 붐을 일으킨 거장이다. 1972년 11월 바로크 및 초기 고전주의시대 음악을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잉글리시 콘서트의 창단멤버가 되어 이 악단을 이끌기 시작했다. 도이치그라모폰 산하 아르히프(Archiv) 레이블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반을 남겼다.

피노크의 연주는 구조가 정연하면서도 흐름이 자유로우며,그 음색은 세월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쳄발로 협주곡,바이올린 협주곡,헨델의 '수상음악',오르간 협주곡,'메시아',비발디의 '조화의 영감',코렐리 합주협주곡,모차르트 교향곡 전집 등은 피노크와 잉글리시 콘서트의 명반들로 꼽힌다. 그가 솔로로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나 '파르티타' 같은 바흐 건반 작품들 역시 명연이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의 첼리스트인 맨슨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빌란트 쿠이켄에게 비올라 다 감바를 배웠다. 피노크의 잉글리시 콘서트와 호그우드가 이끄는 고음악 아카데미 등 최고의 고음악 앙상블 단원으로 연주와 녹음을 해왔으며,현재는 코프만이 리드하는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으로 활약하며 왕립음악원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편성=이번 공연에서 세 연주자는 서로 다채롭게 결합하는 양상을 연출한다. 먼저 세 명이 총출동하는 프로그램은 바흐 플루트 소나타 BWV1034와 BWV1035이다. 여기서 파후드와 피노크,맨슨의 삼각 편대를 만날 수 있다.

다음으로 듀엣의 2종 결합은 바흐 플루트 소나타 BWV1030과 1031에서 펼쳐진다. 파후드의 플루트와 피노크의 쳄발로가 듀오로 연주한다. 따로 떼어놓아도 최고의 솔리스트인 세 명 각자의 독주도 볼 수 있다. 파후드는 텔레만의 환상곡 D장조,피노크는 헨델 '샤콘느와 변주' G장조 HWV435,맨슨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에서 각각 단독 주연으로 무대에 선다. 우리나라 청중에게 더욱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21세기 클래식 공연 양상을 체험할 좋은 기회다.

류태형 <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