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적이고 토속적인 감성을 묘사한 장욱진의 '가족과 호랑이',한국화의 대가 청전 이상범의 '설경',은은한 색조와 부드러운 필치로 그린 도상봉의 '라일락',짙은 윤곽선과 강렬한 색깔로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황염수의 '장미'….

서울 인사동에 있는 선화랑(대표 김창실)의 개관 33주년 기념전.다음 달 1일부터 5월7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규모부터 예사롭지 않다. 작고 작가 이상범 장욱진 이응노 화백은 물론 권옥연 윤중식 김종학씨 등 원로 작가 33명을 비롯해 이왈종 이숙자 송수남씨까지 무려 363명에 달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한다.

출입문 정면에서부터 이들의 작품이 시선을 잡아끈다. 대부분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작품들'이다. 크기는 1~10호로 다양하며 판매 가격은 시중가보다 10~20% 낮게 책정했다.

한 작가의 작품이 벽면에 1~2점씩 모자이크처럼 붙어 있지만 출품 작가의 명성으로 보면 '작은 그림'이 아니라 '큰 그림'전이다. 완성도를 따져 일정한 수준 이상만 모았기 때문에 전시회 부제도 '명품 피크닉-더 많이,더 좋은'으로 붙였다. 현대미술의 최근 트렌드와 위상을 탐색할 수 있는 데다 독특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시장은 마치 한국 현대미술의 '종합선물세트'같다. 20세기 후반 이후 격변의 역사 흔적이 작품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 민주화와 개발경제 시대를 살았던 현대인들의 모습부터 디지털 전쟁 속의 생활 풍속까지 다양하다.

작가 리스트도 화려하다. 인기 작가 도상봉 김종학 이왈종 이숙자씨 외에도 컨템포러리 작가 대부분이 망라됐다.

추상화가 박서보씨의 '묘법' 시리즈도 걸려있다. 김형근씨의 여인초상,변시지의 제주 풍경이 눈에 띈다.

스토리텔링 화풍으로 유명한 황주리,강렬한 선과 색채로 토속적 미감을 연출한 이만익,리얼리즘과 초현실적 설정으로 극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석주,남녀의 사랑 · 만남 · 행복을 시적 감수성으로 묘사한 이수동,원색의 색채화가 이두식,'종이부인' 시리즈로 주목받고 있는 정종미씨 등의 작품이 나온다.

또 전혁림씨의 추상정물, 하모니즘의 창시자 김흥수씨의 누드화, 김정수씨의 진달래 꽃그림과 김재학씨의 장미 꽃 정물화, 지식의 산물인 책과 아톰을 대비시켜 초현실적인 세상을 묘사한 황용진씨의 작품도 주목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창실 대표는 "33년간 선화랑을 거쳐간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한국 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기 위해 마련한 전시회"라며 "단순한 상업 전시보다 예술을 통해 시대정신을 표출하는 마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734-0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