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폐암 투병끝에 입적한 법정(法頂)스님(78)은 탁월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산문집을 통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스님이다.

불자나 스님들 사이에서도 1993년 열반한 성철 스님에 이어 인지도가 높은 스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고, 산문집의 제목처럼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끊임없이 보여줬다.

법정 스님은 평소 "산중 오두막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때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을 때,즉 독서삼매에 빠졌을 때"라고 말해 왔다. 출가를 결심한 뒤 단박에 삭발하고 입은 승복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지만 유일한 '소유물'이었던 책만큼은 끊기 힘든 인연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애서가였다.

그런 법정 스님이 평소 법회 등에서 언급한 책 중 50권을 골라 소개한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숲)이 출간됐다. 법정 스님이 평소 법회나 기고문에서 언급한 책 가운데 300권을 고르고 2년여에 걸쳐 스님과 대화하며 이 중 50권을 추려냈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추천된 책의 주요 내용과 법정 스님이 인용하거나 언급한 내용 등을 소개하고 있다.

평소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법정 스님은 병중에도 원고를 꼼꼼히 읽고 문장을 바로 잡아주었다고 한다.

50권 중에는 종교책,명상서적,동서고금의 문학작품,환경 책,인권 관련서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책이 포함돼 있다. 법정 스님이 경전이나 그 주석서 못지않게 자주 봤다는 《어린왕자》 《꽃씨와 태양》 같은 동화부터 소유에 대한 개념을 배웠다는 《톨스토이 민화집》,읽은 뒤 직접 현장을 찾았던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창간호부터 줄곧 구독해 온 《녹색평론》,인도 철학의 꽃이라 불리는 《바가바드기타》까지 일독을 권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제러미 리프킨의 《음식의 종말》 등도 추천목록에 올랐다. 국내서로는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김태정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 등 고금의 명저를 망라했다.

한편 최근 수년간 몇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은 법정 스님은 지난 겨울 제주도에서 요양해 왔으나 병세가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 끝내 입적했다.

한편 법정스님에 대한 다비식은 오는 13일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다비식이란 시체를 화장하여 그 유골을 거두는 의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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