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감동 소재도 되지만 작위적이면 문제

복잡한 가족관계에 대리모, 씨받이 등 패륜 논란까지 일으키는 '막장' 드라마를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막장'일수록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두고 작가와 제작진의 고민도 클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매번 반복되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백혈병, 기억상실증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그 해결책으로 등장인물의 치매가 껴들었다.

대표적으로 현재 방송 중인 SBS 주말극 '천만번 사랑해'는 고은님(이수경)의 대리모 사실이 알려지면서 갈등이 극에 달해 고은님과 백강호(정겨운)가 이혼 수속을 밟은 가운데 시어머니인 손향숙(이휘향)이 갑자기 치매 진단을 받으면서 종방을 앞두고 상황이 급반전했다.

시청자들은 이를 두고 줄거리가 안 풀릴 때 쓰는 '억지 설정'이라며 작가 등 제작진을 비난했다.

일부 시청자는 "과거 여러 편의 드라마에서 써먹던 소재"라면서 드라마들 사이의 베끼기 관행을 문제 삼기도 했다.

앞서 최근 종영한 MBC 주말극 '보석비빔밥'은 남녀 주인공인 궁비취(고나은 분)와 서영국(이태곤)이 가까워지려는 부분에서 서영국의 어머니 이태리(홍유진)가 치매에 걸린다는 설정을 넣어 논란을 빚었다.

궁비취에게 애정을 쏟던 서영국은 어머니의 치매 이후 힘든 짐을 떠안길 수 없다면서 갑자기 궁비취와 이별을 결심하는 등 억지스러운 전개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궁비취의 가족들이 '간병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결혼을 반대하는 모습도 비쳤다.

물론, 치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가족애는 감동을 주기도 하고 고령화 흐름을 반영하는 불가피한 추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SBS 주말극 '그대 웃어요'에서 강만복 역을 맡은 최불암의 치매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명연기'로 불리며 칭찬을 받았다.

최불암은 치매 때문에 자신이 암에 걸린 줄도 모르고, 70대이면서도 자신을 50대로 착각하는 연기를 선보였고 아들인 강상훈(천호진)은 아버지가 자신을 50대로 생각하고 있으니 거울을 보면 혼란스러워할까 봐 거울에 잡지 사진을 붙여놓는 등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앞서 지난 2006-2007년 방송됐던 MBC 주말극 '누나'와 수목극 '고맙습니다', 일일극 '나쁜여자 착한여자'도 나란히 치매를 앓는 노인들을 등장시켰지만, '막장'이나 억지 논란은커녕 이들과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잔잔한 감동을 줬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드라마에 치매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거나 불성실한 설정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견해다.

SBS 드라마국의 김영섭CP는 "일단 치매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이기 때문에 드라마에 쓸 수 있다"며 "제작자 입장에서는 극적인 상황 전개에도 도움을 준다"고 제작진을 대변했다.

또 "치매의 심각성을 드라마를 통해 부각할 수 있다는 사회적인 이점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 되면 감동을 떨어뜨리고 드라마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치매는 보는 사람이 극단적인 감정을 갖게 하는 요소"라며 "과거 기억상실증이나 백혈병이 그랬던 것처럼 최근 지나치게 많이 쓰이면서 '값싼 감동'을 끌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치매와 같은 병으로 줄거리가 급격히 반전하는 내용을 보인다면 제작진이 불성실한 것"이라며 "일정 부분 현실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대중의 정서를 극단적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