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병기 '비'를 만나다
총칼보다 강한 문화 콘텐츠
한·중·일 뭉치면 겁날것 없다
현지화 없는 韓流는 단명

크리스마스 이브인 작년 12월24일 오후 8시.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호텔 내 공연장인 콜로세움의 4000여석이 가수 겸 배우 비의 팬들로 가득찼다. 3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콘서트(레전드 오브 레이니즘)는 달라진 비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관객의 상당수가 백인이었고 중국 홍콩 일본 필리핀 등지에서 온 팬도 많았다. 다국적 팬들은 2시간여의 공연 내내 그의 몸짓과 손짓 눈짓 하나에 열광하고 환호했다.

비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대중문화 수출상품이다. 가수로서,배우로서 아시아권을 뛰어넘어 세계 무대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유일무이한 사례로 꼽힌다. 국내 최고의 춤꾼에서 월드투어를 통해 아시아의 스타로 발돋움했고,이젠 미국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공연 직전 분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월드스타'가 되기까지 세계 각국을 돌며 느낀 것도 많을텐데 그것부터 물었다. 그가 내놓은 답은 '문화 콘텐츠의 힘'이었다.

"강력한 문화상품이 되고 싶다"

"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한국 배우 몇 명,드라마 몇 편 때문에 한국말을 배우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어요. 한국말을 제2외국어로 만드는 곳도 있고요. 예전엔 자동차나 컴퓨터를 몇 대 팔고 반도체를 수출하는 것들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국을 알려 언어를 배우게 하고 관광 수입이나 외화를 획득하고,또 고용 창출에도 도움을 주는 문화 콘텐츠의 부가적 가치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비는 "문화 콘텐츠가 총칼보다 무섭더라"고 말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 때도 정신(문화)만은 지배당하지 않았기에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고 봐요. 총칼을 들이댄다고 해서 다른 나라 말을 배울지는 의문이에요. 그래서 문화적인 것들을 지배하면 그것이 오히려 총칼보다 무서운 것 같아요. "

자신이 주연을 맡아 흥행에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을 예로 들었다. "시사회 때문에 워싱턴 LA 토론토 등 5개 도시를 돌았어요.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이 '와,저 영화 죽인다. 쟤(주인공) 이름이 뭐야'라고 말한 다음에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어디서나 'Where's he from(어느 나라 사람이야)'였어요. "

이런 경험들 덕분에 비는 "자신이 강력한 문화 상품이 돼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잖아요. 제가 돌아다녀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정말 강력한 (문화)상품이 돼야겠다고.문화 콘텐츠 시장에서는 국적,다시 말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중요하거든요. 제대로 된 인적 자원이 돼서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자는 거죠.문화 콘텐츠의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히 경제도 발전되는 것 같아요. "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은 아니다'는 교훈도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지나치게 한국적인 것만 고집하는 게 종종 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게 그가 내린 진단이다.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융합이 그가 찾은 해법."제 영화 '닌자 어쌔신'만 해도 닌자라는 소스(재료)는 아시아에서 가져왔지만 미국에서도 톱클래스인 워쇼스키 감독과 스턴트팀들이 확연히 다른 비주얼(시각효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거죠."

"아시안 콘테츠의 세계화 멀지 않았다"

할리우드를 따라잡기 위한 구상도 공개했다. "사실 우리가 미국의 거대한 자본이나 시장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한국에서는 1000억원을 들여 영화를 찍을 수가 없잖아요. 모든 인구가 4번씩은 봐줘야 어느 정도 수지가 맞겠죠".

하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이 손잡으면 미국과 싸워볼 만하고,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이 갖고 있는 서정적인 소스와 인적 자원,일본의 아기자기한 세밀함,중국이 보유한 막대한 자본과 거대 인구 등이 합쳐지면 할리우드를 잡을 수 있다는 거죠.마침 미국 문화의 소스가 떨어져 아시아나 유럽에서 가져오고 있거든요. 앞으로는 아시아를 갖는 스타만이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비는 오는 7월께 한 · 중 · 일 합작 드라마 제작에 참여할 계획이다. "한 · 중 · 일 합작 콘텐츠로 아시아에 한번 릴리스해본 뒤 나중에 아시아는 물론 미국의 자본까지 끌어들여 전 세계를 겨냥하는 드라마를 해보는 거죠.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

도대체 이런 아이디어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제는 거물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그들과 밥을 먹거나 얘기하다 보면 '어,그런 드라마 나오면 좋겠네.한번 만들어볼까'라는 식으로 아이디어가 모아지죠.문화산업에 돈을 대는 인베스터(투자자)들과의 모임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어요. "

자신의 현지화 전략도 소개했다. 비는 철저한 현지화가 없는 '한류'는 단명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저희 세대는 아니었지만 1980년대 중 · 후반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같은 홍콩 누아르 때문에 막 난리가 난 시절이 있었죠(주윤발 흉내 내느라).누구든 이쑤시개 물고 다니곤 했지만 얼마 못 갔잖아요. 본질적인 문제점은 현지화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때 홍콩 스타들이 한국말을 했거나 영어를 아주 잘해 할리우드에 자리잡았다면 아직도 인기가 있을 거예요. "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비는 열심히 영어를 배웠다고 했다. 현지화를 위해 미국에서는 한국과는 다른 조직을 가동하고 있다. 현지화 전략은 중국과 일본에도 적용된다. "중국 사람들에게 제대로 맞추려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문화에 대해 공부해야겠죠.일본말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올해부터 다각적으로 공부할 생각이에요. "

"끈기와 오기가 있어야 성공한다"

비는 스스로를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결과론자'로 불렀다. "진짜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으니까 다들 외면하더라고요. 시장 논리로 보면 결과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껴져요.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바짓가랑이를 붙잡든,집앞에서 100일을 기다리든 간에 잡아야 되는 거죠.자존심이나 법적 테두리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든 성공시켜야 된다고 생각해요. "

이런 비를 만든 원동력은 뭘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돌아가신) 어머니죠.늘 저에게 가르침을 많이 주셨어요"라고 대답했다. 지독한 도전정신과 오기,끈기는 그를 발굴한 박진영씨한테 배운 거라고 했다.

또 다른 요인은 없었을까. 물론 전략과 투자도 비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저도 하나의 상품으로서 전략을 세웠고 투자를 했었요. 전략기획실에서 전략을 짜서 연구소에서 투자비용을 계속 댔죠.그래서 만들어진 상품이에요. 상품이란 단어를 나쁘게만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강력한 문화상품이 되는 게 왜 나쁘냐는 거죠.저는 제가 막강해져야 제 후배들의 갈길도 많아진다고 봐요. "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5~10년 뒤에는 진짜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실 팬들이 가수로서 노래를 하기보다는 배우로서 드라마에 나오는 저를 많이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

재단을 설립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제가 지금 (돈을) 악착 같이 모으고 있는 이유는 나중에 재단을 설립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좀 지원을 해주면 그 땅에다 제 돈으로 건물을 지어 춤추거나 노래하고 싶은 아이들,배우나 모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라스베이거스(미국 네바다주)=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공동기획:국가브랜드위원회·미래기획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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