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설씨(34)의 《나쁜 피》(민음사)는 2006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성취를 보여줬다. 경장편소설이라 가벼워보이지만 여기서 터져나오는 필력과 분위기는 압도적이다.

소설은 고물상이 즐비한 천변 어귀의 여인들 이야기를 보여준다. 주인공 격인 화숙은 출생부터 암울하다. 정신지체자라 온갖 남자들에게 성적 희롱을 당하는 어머니가 누군가의 우발적인 욕정으로 잉태한 게 화숙이다. 어머니마저 외삼촌의 손에 죽자 화숙은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외삼촌에게 굽신대며 연명한다. 시궁창 같은 출생과 환경에서 벗어나 보겠다고 아둥바둥해보지만 성과는 전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노력을 더할수록 화숙의 인생은 더러운 고물상의 한 귀퉁이처럼 비루해진다. 욕구불만과 분노만 절절 끓어오른다. 그야말로 '나쁜 피'를 받고 태어나 '나쁜 피'를 바깥으로 쏟아내지도 못하고 썩어들어가는 인물이다.

문제는 화숙이 현실에서 도피하는 방법으로 주변 사람들,특히 다른 여자들의 인생을 망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화숙은 외숙모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거짓말을 외삼촌 귀에 속살거려 외숙모를 집에서 내몬다. 외삼촌의 딸인 수연도 만만한 화풀이 상대다. 화숙이 살면서 감내해야 했을 고난에 연민이 들다가도,다른 힘없는 여자들에게 강자로 군림하며 저지르는 악행을 보면 그런 마음마저 싹 사라질 정도다.

김씨가 소설에서 그려내는 여자들을 보면 증오심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비뚤어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환경에 던져진 그들은 주변까지 병들게 하는 온갖 악다구니를 쓰며 삶을 견뎌낸다. 미워할 수도,쉽사리 감싸안을 수도 없는 인물들은 김씨의 탁월하고 단단한 문체로 설득력과 현실감을 얻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