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사'가 구원자라는 뜻으로 쓰인 것은 중세부터라고 합니다. '백기사'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백마를 타고 홀연히 나타나 곤경에 빠진 사람들은 구해주는 영웅,인수 · 합병의 위기에서 경영권을 방어해주는 '구원 투수',술자리에서 잔을 대신 받아주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요.

전설이나 민담 속의 백기사는 매력적이고 낭만적이며 강인한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미국 정신분석학자 메리 라미아와 메릴린 크리거는 강박적으로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백기사 심리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들은 《백기사 신드롬》에서 늘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며 상처가 많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을 '백기사 신드롬(White knight syndrome)'에 걸린 환자라고 부릅니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건 좋지만 순수하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남을 돕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지나치게 개입하는 '이기적인 구원' 행위로 빠지는 게 문제라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를 도우려 하고,결국 그 때문에 건전한 인간관계를 망친다고 합니다. 상대를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고 상대가 져야 할 책임까지 떠안아 불균형한 관계를 만든다는군요.

원인은 뭘까요. 두 사람은 많은 상담 사례를 통해 '백기사 신드롬에 걸린 환자들이 성장기에 지나친 의무를 떠안거나 아예 방치된 상태에서 자라 상처받기 쉬운 정서를 보이게 됐다'고 분석합니다. '자기 비판' 성향이 강해 상대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배신감이나 죄책감,분노,공포에 시달리기도 한답니다.

해결책은? 한마디로 '갑갑한 백기사의 투구와 갑옷을 벗어 던지라'는 겁니다. 백기사가 돼 다른 사람을 구하다 보면 그 사람을 나의 확장인양 착각하기 쉬운데,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분리해 생각하라는 거죠.이것이 곧 '건강한 자의식'이라고 합니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