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진정 위대한 분입니다. 2000년,2500년 전에 살았던 석가님,예수님,공자님을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따르는 것이나,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수많은 조문 인파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질서를 유지했던 것도 김 추기경께서 그 분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일 겁니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78 · 사진)은 8일 이렇게 말했다. 정 추기경은 이날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추기경 집무실에서 새 책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가톨릭출판사) 출간에 즈음한 성탄 · 송년 기자간담회를 갖고 갈등 해결을 위한 지혜를 성탄절 선물로 나눠줬다.

"사랑하자는 말보다 먼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이해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자기 잘못을 먼저 인정하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이해하면 협력할 수 있습니다. 나라 간에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전쟁까지 나잖아요. 부부싸움도 처음엔 사소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말이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싸움이 됩니다. 가정이든 사회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문제가 커지고 폭발하는 겁니다. "

정 추기경은 특히 사회지도층이 진정성을 갖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은 번드르해도 진정성이 의심스러우면 다툴 수밖에 없다는 것.용산 참사에 대해서는 "법이 너무 미비한 데다 억울한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재개발하는 곳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입법기관이 해결해야 합니다. 입법기관 종사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만큼 제대로 봉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

정 추기경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희생자 유족들이 너무나 안타까워 날마다 잊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현장에 나가 있는 우리(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에게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선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고 있다"며 "아쉬운 것도,정의롭지 않은 길로 간 것도 있지만 해피엔딩이 되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낸 책에도 정 추기경은 삶의 지혜들을 가득 담았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좀더 편한 형태로 교리를 설명한 책이지만 비신자들도 공감할 내용이 많다. 책에서 그는 "사람이 하느님의 속삭임을 들으려면 각자 마음의 라디오 전원을 켜고 마음의 다이얼과 볼륨을 하느님의 주파수에 잘 맞추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양심의 소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새겨 주신 법이기 때문에 반드시 복종해야 할 법"이라고 설명한다.

정 추기경은 책에서 신문에서 읽은 과학기사와 최근의 시사이슈,세계 각국의 속담과 철학 등을 다양하게 인용하고 작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언급하는 등 폭넓은 관심사를 보여준다.

1955년 출간한 첫 번역서를 시작으로 매년 한 권 이상의 책을 내온 정 추기경은 "글쓰기는 내 취미 생활"이라고 했다. 글을 쓰는 동안 몰두하면서 얻는 '조용한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라는 것.정 추기경은 "내년에도 "글을 안 쓰고는 못 배기니까 내년에도 뭔가 쓰겠지"라며 "내 책을 통해 독자들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