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에 카메라 들이댔더니 미술이 되었죠"
디지털 시대에 카메라는 미술 창작의 매력적인 도구다. 캔버스와 붓 대신 카메라로 시각적 충격을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 설치 작가 정연두씨(40)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인간의 꿈과 추억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포착하는 데 뛰어나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작가다. 백남준 이후 국내 작가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사진영상 작품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를 판매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국제갤러리 전속작가인 정씨가 이번에는 미술과 마술의 융합을 시도한 50분짜리 신작 사진 영상물 '시네 매지션'을 미국 시장에 선보였다. 지난달 19~20일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극장에서 열린 '시네 매지션' 발표회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을 비롯해 MoMA의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구겐하임 미술관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먼로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독특하고 각별하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정씨를 5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네 매지션'은 마술사 이은결씨의 공연 장면을 영상미술로 시각화한 작품입니다. 한 시간 남짓한 영상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아무런 편집 없이 보여줌으로써 연출자의 의도대로 편집된 영화의 허구와 실제의 차이를 보여주지요. "

마술사가 무대 위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동안 정씨와 스태프들은 마술공연과 관객을 함께 촬영하고 이 영상은 무대 뒤에 마련된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영된다. 무대 위의 마술에 초점을 맞추면서 관객들이 느끼는 긴장감과 공연장의 다양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를 통해 관람객들의 눈이 경험한 것과 카메라가 포착한 것의 차이를 곧바로 확인시켜 준다.

"제 작업은 훌륭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해서 찍는 겁니다. 19세기 프랑스 영화 제작자였던 조르주 멜리에가 간단한 카메라 작동법을 이용해 같은 장소에서도 마법같은 영상 효과를 발견해냈던 것에 영감을 받아 '시네 매지션'을 만들게 됐어요. 공연장 안에 갇혀 박제된 관람객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거든요. "

마술은 미술에 모티프를 제공하고 미술은 마술에 영상을 입혀 새로운 작품으로 승화시킨 셈.정씨는 "대상이 살아 숨쉬도록 하는 것이 사진 · 영상 작업의 힘"이라며 "내 작품이 기존 영상미디어와 다른 점은 강렬하고 직선적으로 대상의 본질을 끌어내는 힘"이라고 말했다. 사진에서 익힌 노하우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예술활동은 결국 기존의 편견과 통념에 도전하는 겁니다. 도발적인 작품으로 신선한 충격을 줌으로써 인식의 확장이나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야죠."

이를 위해 그는 눈에 보이는 것만 찍었던 그동안의 사진 작업에서 과감히 벗어나 꿈이나 상상력 등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07년 정씨를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 것은 사고의 틀을 깨는 참신성을 높이 산 결과였다.

누군가의 꿈을 사진으로 나마 실현해 주는 '내 사랑 지니'(2001년),어린이들의 상상력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낸 '원더랜드'(2004년),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영상으로 연출한 '로케이션'(2004년),과거의 향수를 잡아낸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아'(2007년) 등의 작품들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미대와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내년 6월 파리의 메이저 화랑인 엠마뉴엘 페로틴 갤러리 개인전에 '시네 매지션'을 출품한다. 또 내년 5~8월 열리는 샌타바버라 미술관 그룹전과 네덜란드 KAAP 비엔날레에는 신작 '아버지'와 '타임 캡슐'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