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정상회의를 앞두고 '기후변화'가 국제사회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이런 시점에 나온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면서 뚜렷한 대안까지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기든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의 연계성을 강조하면서 이 두 가지 목적을 적시에 이루기 위해 국가가 취해야 할 정치적 방향을 제시한다. 그는 기후변화 위험성에 대한 회의론과 비판론,급진론 등 다양한 견해와 배경을 소개한 다음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너지 자원 고갈에 따른 에너지 안보 문제를 연계시켜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입증한다.

또 '녹색'이라는 단어에 친숙한 우리에게 녹색운동의 기원과 사전예방 원칙의 모순을 설명하고 녹색사상과 지구온난화 사이의 차별성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정치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정치적 · 경제적 통합을 진작하고 그 일을 시행하라.특히 기업인들에게 정책 방향을 사전에 제시하는 관행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데,그들이야말로 새로운 환경정책 시행에서 최상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의 관심을 그들의 일상사와 연관지어 설명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런 일상사에 굉장한 문제점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라.예를 들어 일반대중은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한 경고보다는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운전 요령에 더 잘 반응할 것이다. '

'지구온난화 문제로 정치적 이득을 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버려라.어쩌면 그러고 싶은 유혹이 상당히 클 것이다. 정부나 집권여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보다 기후변화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요 야당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기후변화 정책은 그 속성이 대단히 복잡하므로 각각에 대해 장기적인 영향까지 고려한 정밀한 리스크 평가를 시행하라.'

그는 영국을 중심으로 스웨덴,독일,아이슬란드 등 기후변화에 선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국가들의 정책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기후변화 대응의 복잡성과 어려움을 설명한다. 그리고 "범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선진산업국들이 앞장서야만 하고 그 성공 여부는 정부와 국가의 역할에 달려 있다"는 핵심 주장을 펼친다.

이 대목에서 그는 '책임국가'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기후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시장,시민사회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기후변화 정책의 국지적 · 지역적 · 국제적 측면을 통합하라고 역설한다.

그 수단으로는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제도화할 수 있는 탄소세 적용,신재생 에너지 및 에너지 절감 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제시한다. 아울러 기후변화의 대응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서도 국가의 선도적 역할과 산업계,시민사회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후 문제의 지정학적 분석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의 긴밀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의 지원,특히 최대 에너지 사용국이자 온실가스 발생국인 미국과 중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한다.

"현재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한 어떤 정책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서 왜 지금까지 시도된 기후변화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지를 살펴보라는 기든스의 논리는 기존의 기후변화 관련 서적들과 차별된다. 그는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리스크 대응부터 각국의 정치 사회 역사적 배경까지를 고려하면서 왜 기후변화 대응에 정치가 개입해야 하는지를 타당성 있게 설명한다. 여기서 정치란 '국가의 모든 구성요소가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작용'을 말한다.

결국 복잡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 계층의 합일과 국제사회의 통합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왜? 기후변화 문제는 일부의 문제도 아니고 또 일부의 노력으로 해결될 사안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지미 < 에너지기술평가원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