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루시드 폴(본명 조윤석 · 34)의 이력은 이채롭다. 서정적인 포크 선율과 따뜻하고 아름다운 가사 때문에 '음유시인'으로 통하지만 그는 촉망받는 과학도였다. 그가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일산화질소 전달체용 미셀(Micelles for Delivery of Nitric Oxide)'이 최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케미스트리와 미국 화학학회지(JACS)에 실렸을 정도다. 이 논문 내용은 심혈관 및 발기부전 치료에 응용할 수 있어 의료계 및 학계의 관심이 높다. 덕분에 세계 유수 대학이 교수직을 제안하고 기업체에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앨범 준비로 정신이 없다"며 "다시 공부할 생각은 없고 제 연구성과들을 공학계에서 이용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네티즌은 '국가적 손실이다''순도 100% 엄친아는 역시 다르다'며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1993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입학과 함께 음악활동도 병행했다. 물론 음악에 좀 더 무게를 뒀다. 혼자 기타를 배워 시작한 음악활동은 대학 1학년 때 제5회 유재하가요제에서 동상받은 것을 계기로 1990년대 중반 밴드 '미선이'의 멤버로 이어졌다. "중학교 3학년 때 음악을 좋아하는 짝꿍에게 영향받아 그때부터 뮤지션을 꿈꿨습니다. 대신 음악은 굳이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대에 진학했습니다. "

과학도보다 음악인으로 잘 나가던 그는 2002년 졸업과 함께 영화 '버스,정류장' OST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홀연히 유학을 떠났다. 그는 "학업에 대한 미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우연히 들른 스웨덴 왕립공대 홈페이지에서 학비 무료는 물론 생활비,숙식처까지 제공한다는 문구를 봤는데 '이거다 싶어'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유학 생활 6년 동안 공부에 열중하느라 대학이 있던 스톡홀름이나 로잔 등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웃었다. 스웨덴 왕립공대에서 재료과학 석사 학위를,스위스 로잔연방공대에서는 생명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유학 중에도 음악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01년 솔로 데뷔 앨범인 1집 새 등 6장의 앨범을 냈다. 앨범은 매번 음악 차트 상위권에 올랐으며 덕분에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싱글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음악과 과학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그의 최종 선택은 결국 음악이었다. 그는 "공부가 흥미롭고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내 길은 아니었다"며 "객지에서 고독을 붙들고 6년간 정말 열심히 했지만 공부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오직 음악을 위해 '완전' 귀국했다.

루시드 폴은 오는 10일 정규앨범 4집 '레미제라블'을 발매하고 19일부터는 서울,부산,대구 등에서 공연을 갖는다. 3집까지는 음악과 학업을 병행했지만 이번 앨범은 귀국 후 음악에만 몰입한 산물이다. 그는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 중 가장 많은 13곡이 수록될 예정"이라며 "포크를 포함해 보사노바,오케스트라 편성 등 전보다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계속 앨범을 낼 수 있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글=김주완/사진=강은구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