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총통.불량자기포 등 보물급 수두룩..'군기시'터

서울시가 새로운 시청 청사 건물을 계획 중인 중구 태평로 1가 31번지 일대 옛 서울시청 북편에서 보물급으로 평가되는 임진왜란 이전 각종 무기류가 무더기로 출토됐다.

나아가 발굴조사 결과 신청사 부지 일대는 조선시대에 각종 무기류를 제작하던 관청인 군기시(軍器寺) 관련 건물이 있던 곳임이 확실해진 데다, 조선전기 이래 후기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는 각종 유적이 밀집한 곳으로 드러남으로써 신청사 건립 계획 자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은 지난 6월11일 이후 신청사 부지 5천919㎡를 발굴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호안석축(護岸石築. 물가에 돌로 쌓은 벽) 1기와 건물지 21동, 담장 9기, 우물 2기를 비롯해 근현대에 이르는 각종 유구(遺構) 44기를 확인했다고 30일 말했다.

이 중에서도 15세기 이래 사용한 조선시대 건물지인 1ㆍ2ㆍ12호에서는 '가정(嘉靖) 계해(癸亥) 지통(地筒) 중(重) 75근(七十五斤) 8량(八兩) 장(匠) 김석년(金石年)'이라는 명문이 적힌 대포 일종인 불랑기자포(佛狼機子砲)를 비롯해 승자총통 다수, 화살촉이 유별나게 커서 '대장군전촉'이라 일컫는 대형 화살촉 등의 무기류가 대량으로 출토됐다.

이 중 불랑기자포는 출토지가 확실한 최초의 유물이며 그 명문을 통해 제작연대가 1563년(명종 18)이며, 그 외에도 그 무게(75근8량)와 제작자(김석년) 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된다.

이 유물은 확실한 출토지는 모른 채 1982년 9월11일 서울 강서구 목동 칼산 지하철매립 작업장으로 어딘가에서 옮겨온 흙더미에서 발견됐고, 현재는 육군박물관이 소장 중인 불랑기자포 3점(보물 861호)과 제작 연대가 똑같다는 점에서 비상한 주목을 요한다.

불랑기자포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해 발사시키는 화기로 15세기에 포루투갈을 포함한 서구제국에서 제작돼 1517년 무렵 중국 광동 지역에 서역상선을 통해 동양에 전래됐다.

'불랑기'가 어떤 말에서 유래했는지는 불확실하며, 서양 사람 이름에 흔한 '프랑크'(Frank)를 옮긴 표기라는 말도 있다.

발굴조사단은 이런 무기류는 "민가에서 소장할 수 없으며, 조사지역 건물지와 군기시의 관련성을 볼 때 군기시 본건물 외곽의 부속 건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신청사 부지를 비롯해 주변 청진지구 등지에서 최근 추진되는 각종 대규모 공사 현장에서 조선시대 유적과 유물이 쏟아짐에 따라 문화재위원회는 4대문안 재건축 방향을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문화재위원은 "이런 식으로 재건축을 남발하다가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고층건물에 파괴, 매몰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면서 "서울시 신청사 부지에 대해서도 유적과 유물의 성격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에 그 보존 여부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신청사 부지 중 91%가량은 경성부청사를 포함한 여러 시설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지반이 훼손된 상태다.

이번에 발굴된 유물은 지층이 훼손되지 않은 나머지 9% 부지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발굴조사를 마무리하고 유구를 이전하고서 전체 지하층 골조공사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는 서울시 관계자의 말과는 정면 배치된다.

이 문화재위원은 "그건 서울시의 바람일 뿐이며, 그 유적과 유물 처리에 대해서는 어떤 방향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이유미 기자 taeshik@yna.co.krgatsb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