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사과씨(25)의 두 번째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문학동네)는 가진 것은 없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청춘 남녀의 러브스토리다. 주인공인 '나'는 그 어디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다. 그나마 내세울 거라고는 대학생 때 소설가가 됐다는 점 하나뿐,그나마도 '내가 쓴 글은 바닷속 플랑크톤 한 마리만큼의 영향력도 없었다. 나에게 돌아온 것은 몇 푼의 돈과 지하벙커만큼 견고한 침묵뿐'이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도 불꽃 튀는 사랑이 다가온다. 우연히 길에서 한 남자를 보는 순간 '마치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은 것 같은,아니 밤하늘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나'는 미친듯이 한 시간 동안 그를 쫓아간다. 금방 사랑에 빠진 두 사람,'나'는 남자에게 '풀'이란 이름을 붙여 주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동안 글을 쓰는 나와 그림을 그리는 풀은 왕성한 창작 열기를 내품는다.

그러나 사랑과 예술만으로 삶이 충만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름다운 것들은 박물관과 백화점에 있지.하지만 말이야.박물관이나 백화점은 절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못해.단지 아름다운 것들을 가져다놓은 것뿐이야"라고 말하면 무엇하나. 박물관에 걸릴 만큼 가치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엔 아직 미숙하고,백화점에서 원하는 물건을 척척 들여놓기에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시련이 닥쳐온다. '나'와 풀의 통장 잔고는 0에 한없이 수렴해가고,독점욕에 사로잡힌 '나'가 풀의 그림을 망쳐놓으면서 이들의 관계는 끝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