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헐고 목조건축으로 신축하고 있는 광화문(光化門) 복원 상량식이 27일 오후 4시 복원공사 현장(사진)에서 궁궐 전통의례에 따라 거행된다. 조선 고종 때인 1865년 11월27일(음력 10월11일) 광화문을 중건하면서 상량한 지 꼭 144년 만이다.

상량(上粱)은 기둥에 보를 세우고 그 위에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걸친 다음 마지막으로 마룻대(종도리)를 옮기는 일로,목조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이날 상량식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제례보존회가 조선시대 국조오례의에 근거해 상량문 봉안의식을 거행한다. 상량문 글씨는 서예가인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가 썼다. 이어 이건무 문화재청장과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인 신응수 대목장(大木匠)을 비롯한 전통건축 장인들이 상량을 하게 된다.

광화문 복원은 2006년 12월 '경복궁 광화문 제모습 찾기' 선포식을 시작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인 옛 광화문 철거,원위치 확인을 위한 발굴조사,가림막 설치,육축(陸築 · 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큰 돌로 만든 성벽) 축조 등의 과정을 거쳤다.

상량이 끝난 뒤에는 추녀와 서까래 설치,지붕 기와 잇기,단청 등을 거쳐 내년 10월 광화문 복원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광화문 현판은 1900년대 초 사진을 근거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디지털 복원기술로 원형 복원한다.

광화문은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경복궁의 정문으로 건축돼 세종 때 광화문이라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으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소실됐다. 그 뒤 고종 2년(1865년)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중건됐으나 경술국치 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신축하면서 1926년 해체돼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옮겨졌다. 또 한국전쟁 때 목조부가 소실되고 석축부만 남게 되는 수난을 겪었다.

1968년 광화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달고 중건됐지만 당시 중앙청으로 사용하던 옛 조선총독부 청사 축에 맞춰 건립되면서 원래 위치에서 비껴난 데다 철근 콘크리트로 건축돼 제 모습 찾기가 추진돼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