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탄생 200주년,대표작인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불교의 핵심사상인 연기론(緣起論)과 진화론의 소통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불교전문 인터넷매체인 미디어붓다와 월간 불교문화가 27일 서울 마포동 다보빌딩 3층 법당에서 '다윈과 불교의 만남'을 주제로 여는 학술대회다. 기독교의 창조론과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진화론이 불교와 어떤 접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대한불교진흥원이 후원하는 이날 행사에는 이한구(성균관대) 안성두 · 홍성욱(서울대) 최재천(이화여대) 교수가 주제를 발표하고 김성철(동국대) 우희종(서울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선다. 미리 공개된 발표문을 보면 일단 진화론과 불교의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둘의 근본적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한다.

자연과학과 철학의 통섭을 시도해온 최재천 교수는 '불교와 다위니즘-그 흥미로운 수렴'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불교의 무아연기론을 비교한다. 그에 따르면 진화란 생물의 형질이 유전자라는 정보물질을 통해 전파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생명은 끊임없이 해체되고 다시 조합돼 새 생명으로 윤회하는 불교사상과 상당히 유사하다. 또 '나'라는 존재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온(구성요소)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무아론은 생명체는 소멸해도 DNA는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진화생물학의 원리와 흡사하다.

그러나 최 교수는 "불교의 교설과 다윈주의의 유사성은 엄청나게 많이 끌어낼 수 있지만 그런 유사성은 모두 표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며 실제로 둘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무아론의 반유물론적 본질은 철저하게 유물론적 과학인 진화생물학과는 도저히 넘기 힘든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최 교수는 "과학과 종교는 결코 하나로 융합할 수는 없어도 충분히 통섭할 수는 있다"며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생명은 언뜻 섬뜩하고 허무해 보이지만 그 약간의 허무함과 소름끼침을 받아들이면 스스로 철저하게 겸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자연의 일부로 거듭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안성두 교수는 '진화론의 불교적 함의'라는 발제문에서 "유물론을 전제로 한 진화론과 정신을 생명의 본질적 요소로 받아들이는 불교 사이에는 생명관의 차이로 인해 결코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다"면서도 둘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진화의 개념은 모든 것을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관찰하는 불교의 태도나 무상관과 통한다. 또 불교 관점에서 보면 DNA는 업을 보존하고 있는 업종자로 볼 수도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과학철학과 과학사를 전공한 홍성욱 교수는 불교와 진화론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도 둘의 차이를 강조한 달라이 라마의 견해를 인용한다. 기독교가 진화론을 수용해서 '세상을 지배하는 신'을 '자신을 낮추는 신'으로 바꾼 이유는 바로 21세기에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통스러운 대답이다. 마찬가지로 과학도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과학적 지식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또 이한구 교수는 존재론과 인식론,윤리학의 영역에서 진화론이 어떻게 논의될 수 있는지를 살핀 다음 진화론적 이성주의에 주목한다. 진화론적 이성주의란 이성은 진화의 산물로서 이성의 출현에 의해 다른 생명계로까지 윤리의식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