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 영월의 청령포에 유배됐다. 남한강 상류의 서강에 둘러싸인 이곳 솔숲에는 관음송이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단종은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서울을 바라보면서 통곡했다고 한다. 그 비참한 모습과 슬픈 목소리를 지켜보고 들은 소나무 이름은 '볼 관(觀)'자와 '소리 음(音)'자를 딴 관음송(觀音松)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과 무령왕릉 관재 등 나무 문화재 연구로 유명한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의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에는 이 같은 사연들이 촘촘하게 적혀 있다. 그가 14년 동안 발품을 팔며 전국의 천연기념물 나무에 얽힌 전설과 사연을 담아낸 것.250여 천연기념물 나무와 숲 가운데 역사 · 문화적 가치가 높은 73곳을 선별해 싣고 사진도 곁들였다.

조선 전기의 문신 김종직이 함양군수 시절 다섯 살배기 아들을 홍역으로 잃었는데 아이의 이름이 목아(木兒 · 나무 아이)였다는 얘기와 그가 이듬해 함양을 떠나면서 학사루 앞에 1000년을 살 수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나무 아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는 사연도 들어있다.

그는 '우리는 나무 문화재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지만 문화재로서의 값어치를 따지면 천연기념물 나무는 다른 어떤 유물에도 뒤지지 않는다'면서 '기나긴 세월 마을 지킴이로 살아온 나무에는 세상살이의 이런저런 사연이 얽혀있고,이는 우리의 구전문화이자 역사의 편린을 꿰어맞출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고 썼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