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지난 10여년간 영국의 범죄는 줄었지만 교통사고나 흉악범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길거리 꽃장식은 크게 늘었다. 전국 어느 마을에서나 '셀로타프'라는 꽃추모비를 볼 수 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기꺼이 꽃을 놓고 애도한다. 이 같은 집단추모의 물결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자동차 사고로 숨을 거둔 뒤 영국 전역을 휩쓸었다. 침묵하던 왕실조차 뒤늦게 추모사업에 뛰어들게 할 정도로 강력한 영국인들의 '집단적 슬픔'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2.도브는 1957년 론칭 이후 40년 동안 그냥 '비누'였다. 그러던 도브가 '뷰티'로 변신을 꾀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뷰티 브랜드로 가득했다.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해냈다. 도브는 뷰티시장 진출 1년 만에 700%라는 경이적인 매출 상승을 기록하며 단숨에 서유럽의 대표 뷰티 브랜드로 지라잡았다. 도대체 무엇을,어떻게 했기에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영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마크 얼스는 이 같은 대중행동의 원동력을 '집단''무리'를 뜻하는 낱말 '허드'에서 찾는다. 그는 《허드(Herd)》에서 '현대사회의 진정한 권력은 대중에 있으며 대중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비자와 시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단순한 마케팅 전술서라기보다 인간과 사회,시장의 본질을 파헤치는 '통섭의 인문교양서'라 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대중은 결코 '우매한 군중'이 아니다. '엘리트'들의 뜻에 따르기보다 앞장서 사건을 주도하기도 한다. 개인과 자아를 중시하는 서구에서는 '군중'을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이용당하기 쉬운 존재로 여겨왔다. 그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 '우리'보다 '나'에 초점을 맞춘 문화적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실제로 서양에서 개인 중심적 사고는 신분제로부터 자유를 얻어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반대로 군중은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정치적 선전에 자주 이용당했다.

이 때문에 서구인들은 2002년 한국의 월드컵 응원 인파에서 나치즘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섬뜩한 힘'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구인들이 중시해온 인간의 '자유의지'나 '합리적 이성'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나아가 동양의 관계지향적 유교문화와 타인을 중시하는 아프리카의 '우분투(공동 인간애)' 사상을 예로 들면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라는 '그물'로 엮여진 '우리 중심적 존재'라고 역설한다.

그는 이런 인간의 사회적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비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면서 기업들의 '착각'을 경고한다. 많은 기업이 '얼리 어답터(남들보다 먼저 신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나 스타 같은 선도자들을 이용해 대중을 이끌려 하지만 대중이 믿고 따르는 것은 얼리 어답터가 아니라 '친구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상대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게 '설득'이 아니라 '영향력'이고,'충성도'보다 '추천'이 더 강력하며,'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라 '영향력 행사자'들이 사회를 이끈다고 거듭 강조한다.

아울러 점보 제트기의 부품처럼 '복합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요네즈의 혼합성분처럼 '복잡한 것'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점보 제트기는 수백만 개의 부품들로 이뤄져 있지만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할 수 있다. 이처럼 분리와 재결합이 가능한 게 '복합적'이다.

반면 마요네즈는 기름과 계란 노른자,양념 등 다양한 성분의 상호작용과 그걸 서로 혼합한 방식의 결과로 생긴 혼합체이기 때문에 이를 분리해 원래의 성분을 얻거나 다시 결합할 수 없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 대중행동은 개별 주체들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내재적으로 '복잡'하다. 그런데 우리는 복잡한 것을 복합적인 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대중행동을 설명한다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개별 구성요소들을 분해하는 것 아닌가. 이게 바로 우리가 그렇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대중행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다. '

따라서 그는 이성적 분석보다 감성적 헌신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한다. 또 대중행동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고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지렛대도 '개인'보다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가 제시하는 IT(정보기술)시대의 최고 마케팅 전략도 '관리'가 아니라 '공동창조'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